나는 당분간 '고흐의 연인' 이 되기로 했다.

재능은 약일까 독일까, 사약과 보약사이

by 한약여신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난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


위로가 필요한 순간, 무조건 내편이 필요한 순간, 답정너.로라도 '너는 할수있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 이제는 그런 순간이 오면 서점으로 달린다. 저 많은 책들 그 무한대의 단락 중 한 문장은 지금의 나를 이해 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지 못하고 지내다 어느 이른 아침 바로 개장한 서점의 고흐 코너에서 의아하게도 나는 발걸음을 멈췄었다.


'별이 빛나는 밤' _ 빈센트 반 고흐 1853


때로 시간차를 두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각처럼 섞이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퍼즐로 맞춰지며 하나의 키워드로 삶을 정의 내리게되는 때가 있다. 또 다시 마주한 위기의 순간. 나는 약간의 미칠듯한 마음으로 서점의 심리학 코너에서 그 한문장 을 찾다가 고흐를 만났다.


[‘평가와 본질은 일치하지 않는다’...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단 그림 1점만을 친구를 통해 팔았을 뿐이.....]


아, 고흐!구나


그때 부터였다. 올해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기 위해 이토록 흔들렸나 싶을 정도로 훌쩍 지나버린 계절을 앞두고 나는 한 해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고흐 안에서 축복할 수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고갱 친구?,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한 미치광이 가난한 화가.. 평범하게 고흐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박살났다.


적어도 내가 만난 고흐는 (‘고흐의 688통의 편지' 中) 지독하게 추운 겨울에는 여름이 오든 말든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결국 어느 화창한 아침이 되면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해빙기를 맞으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귀를 자르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지만 적극적인 우울을 택하여 침체된 고민에 빠진 절망이 아닌 ‘희망과 열망이 담긴 우울’을 택하여 사는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우리자신으로 살아야한다고 지금 나를 짓누르는 생각들을 내려놓아 나쁜의미의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 “넌 할수 없어” 라는 주문을 깨부수는 진실되고 열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난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




나는 그렇게 고흐를 만났다.


사람들은 그를 태양을 사랑한 인상주의 화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를 별의 연인, 비를 사랑한 순수한 화가. 였다고 말하겠다! ‘빗방울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그의 말이 한 방울씩 심장에 떨어지며 나를 위로한다. 그의 달콤한 말의 효엄은 그 어떤 진귀한 약재를 달인 한약보다 쓰지만 끝내 달다.


마을이나 도시를 검은 점으로 표시해놓은 지도를 보면서 꿈꾸었던 것처럼 별을 보면서 늘 꿈꾸었다는. "왜 저 창공에 있는 별들의 점은 프랑스 지도에 있는 검은 점보다 가기 힘든 걸까?"라고 묻는 고흐가 이제는 가 닿았을 그 별을 내 방의 창문 앞에서 헤아려본다.


나는 이렇게 또 고흐를 만난다.


[1882년 1월 21일]
언젠가는 내그림들이 팔릴것이다.

[1887년 10월]
마음속에 불을 가지고 있는 영혼들은 그걸 계속 억누르고 있을 수가 없다.
질식하느니 태우는 것이 낫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 숨을 쉴 수있다.
그림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거다.

[1885년 12월 28일]
넌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사실 돈을 받을때 내가 정말 갈구하는 것은
비록 굶주리고 있어도 먹을거리가 아니라 간절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모델을 찾으러 나가 돈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언젠가는 내그림들이 팔릴것이다.


- 반 고흐, 인생을 쓰다 (내 손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 반 고흐를 필사하다) 中 /저자-빈센트 반 고흐/출판-원앤원스타일-

말한 고흐를 생각한다.


온화한담약(溫化寒痰藥)에 속하는 한약재 '천남성(天南星)'


그림을 향한 그의 붉은 열정이 불룩 튀어나온 혈관을 타고 팔딱팔딱 뛰는 듯하다. 붉고 위태로우면서도 뜨겁고 자극적인 그 재능의 기운은 독과 약 사이를 오가는 어떤 한약재와 닮아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는 '천남성(天南星)' 은 장희빈이 마셨다는 그 사약의 주된 성분이자 동시에 중풍과 담을 치료하는 한약재로도 쓰인다.


사촌동생 태오에게 용돈을 빌어쓰며 끼니대신 모델료를 지불하고 그림을 그리며 꿈을 먹어살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끝내는 자신의 심장에 총구를 겨닌다. 귀와 심장을 잃어가며 지킨 그의 그림에 대한 화가로써의 재능은 살아생전에 10점 도 판매하지 못하지만 사후에 1000억원을 호가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로 환생한다.


재능이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면 고흐에게 내린 그 재능은 사약이었을까 보약이었을까,재능으로 나의 연인 고흐는 생명을 잃은 것 일까, 명예를 얻은 것일까.


사람이 타고난 재능에 대하여 밀리언셀러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의 백영옥 작가는 글쓰는 재능을 가지고 수많은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지만 떨어지는 족족 해당 주최 '신문사 구독 사절' 을 집앞에 붙여 놓았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더이상 구독할 신문사가 없어질 무렵 월드컵이 두 번 열리고도 2년이 지난 시간 끝에 수상한 그녀는 당선소감으로 그간 탈락한 신춘문예 내역을 보냈는데, 주최측으로 부터 지면부족.. 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그녀가 말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와 '꿈은 잠 잘 때나 꾸는것' 이라는 괴리 사이를 매꾸는 것은 재능의 저주일수도, 재능의 축복일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그 재능의 사약과 보약 사이의 경계점을 가르는 열쇠는 타이밍과 임계점을 넘은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중 한명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29세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일인칭 단수] 이야기가 겹쳐 떠오른다.




그의 그림을 향한 별 빛의 열망과 쏟아져내리는 에너지의 빗줄기에 문득 나의 꿈을 향한 열정의 역사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화가로써의 열정은 그가 남자. 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지만 고흐는 사랑한다. 그리고 버림받는다. 철저하게.


'사랑은 불켜진 램프'와 같다고 말한 그를, 이 빌어먹을 그림' 때문에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린 서른 다섯의 고흐를,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진짜 사랑을 잃게 만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사랑 또한 예술을 밀쳐낸다고 말한 1887년 여름의 남자를 나는 사랑하기로했다.


나는 당분간 감히! '고흐의 연인' 이 되기로했다.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낙태.정신병.배신으로 그를 떠난 여인들처럼 나 또한 삶의 행복의 균형이 맞춰지면 130년 전의 남자를 떠나버리겠지만 불연속적으로 마치 보어의 원자이론처럼 ‘양자화’ 된 그의 붓터치를 느껴본다. 이렇게 고흐안에서 고흐안에서 내가 깊숙이 더 깊숙이 전율이 이를때까지.



도심 외곽의 우연히 들린 카페 전경에서 귀가 잘린 고흐를 만났다.


고흐의 말처럼 나 또한 ‘아직 갈 길은 멀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나의 싸움을 계속 해 갈테다.


고흐와 함께 '고흐의 130년 후 연인' 으로.




[1881년 12월 29일]
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한다. 수위가 높아질 거다.
내 숨통까지 점점 차오를지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니?

하지만 나는 나의 싸움을 계속해나갈 테고, 내 삶을 값지게 살 테고,
헤치고 나가 이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 반 고흐, 인생을 쓰다 (내 손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 반 고흐를 필사하다) 中 /저자-빈센트 반 고흐/출판-원앤원스타일-





여기까지가 6년 전 어느 겨울 나의 일기이다.


그 시절의 나는 의료계에 입성하고자 명문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않은채 수많은 의대, 약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에 응시하고 있었다. 가장 빛날 이십대, 나의 청춘이 원서번호로 귀결되던 시절.


고흐를 만나고 '평가와 본질은 일치하지 않는다' 는 빈센트를 향한 슬로건은 그 시절의 나를 사무치게 위로했다. 서두에서와 같이 딱, 그 말 한 방울이 심장에 똑똑 떨어질 때 시퍼런 피가 새붉게 도는 듯 했으니.


그리고 아마 그 이듬해 늦은 겨울나는 약학대학에 진학하고 의학전문기자로 재직했다. 또 그 이듬해 정부지원으로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한약사 면허를 취득 한 지금은 식약처 공직을 거쳐 대학병원 약제과에서 일하며 그 때와는 또 다른 평가 앞에 나의 본질을 가늠해 보면서 살아간다.


결과론적으로 보이는 것 만으로는 순탄한 진로의 길을 지내온 듯 한 내가 그 이후로 삶에서 빈센트를 만나지 않았을까?


빈센트를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 지독하게도 반 고흐는 내 삶을 쫒아다녔다.


약학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경기도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개관부터 2년여간 홍보팀에 재직했다. 혹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말 없는 삶' 을 살아본적이 있는지, 이용자 안내와 민원인을 담당하면서 주말 이틀간 1000여명의 낯선 사람들을 마주해왔다.


어느 소나기가 거세게 내리치던 날 성난 한 민원인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며 도서관의 모든 행정 민원을 내탓으로 돌리며 멱살잡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울먹이며 부관장과 면담을 하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난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



나의 고고한 성향이 때로는 불안정한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일터의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증폭될 때의 공포란. 상황의 중대함보다 나의 본질이 행여 극성 민원인의 태도처럼 인간실격.이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더 두려웠다.


부관장과의 면담 후 30분 쯤 지났을까, 한 91세의 할아버지가 내게 도서관의 회원가입 안내를 부탁했다. 20여분간 나역시 낑낑대며 최대한 해드릴 수 있는 만큼 어르신을 도우며 설명을 드렸다.


지팡이를 지신 어르신은 나의 안내로 무사히 회원카드를 발급받아 보고싶어 하시던 책을 빌리셨고, 내게 "너무도 고마웠다" 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힘겹게 주머니를 한참을 뒤지셨다.


그리곤 반은 녹은 초콜릿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셨는데


그 초콜릿에 '고흐' 가 그려져 있었다.

[Oleanders 1888_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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