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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21. 2019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어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고 (1) 

보노보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나오는 데다 은근히 교훈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있어서 어른이 되어서 꼭 봐야 하는 애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와중에 보노보노 마니아 작가님이 보노보노와 함께한 에세이를 냈다. 작년부터 트렌드가 된 에세이 방식이다. 빨강머리 앤도 그렇고..  무언가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작가님의 인생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생각해볼 문제들을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래서 보노보노와 함께 고민한 문제들을 내 생각을 넣어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은 총 4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 안에 각각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큰 틀에서 비슷한 종류로 묶어놓았다. 파트별로 나누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파트 1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 

관계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지는 일로 완성되거늘, 우리는 정작 타인의 마음을 위로할 줄도 모른 채 관계를 맺으며 산다. 

나는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가장 많이 위로받았다.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다


대학생 4학년 시절, 신입생들 멘토를 한 적이 있다. 그냥 나이만 좀 더 많은 것 빼고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까. 고민을 한가득 앉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다른 친구들에게도 위로가 아닌 훈계를 시작했다. 위로해준다는 핑계로 꼰대 짓을 한 것이다. 정작 친구나 후배는 자신의 고충을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했을 텐데 나는 그 친구를 위한 다는 말로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지금은 같잖은 조언은 하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그저 술 한잔 같이 해주고, 필요할 때 발 벗고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한다. 



별것 아닌 대화가 필요해

사소한 이야기라도 주고받지 않으면 삶은 점점 더 쓸쓸해지고 말 거라는 거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보노보노는 아빠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한다. ‘재미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꽤 괜찮은걸’ 


어릴 때 나는 항상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싫었고 남들처럼 사는 것을 거부했다. 나이가 들면서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그 일상마저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게 되었다. 사소한 이야기가 시간낭비라 여겼지만 그 사소한 이야기가 나와 친구를 끈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부랄 친구와 하는 이야기는 항상 과거 이야기다. 그런데 매번 웃기고 재밌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그게 사소한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지루해 보여도 함께 일상을 공유했다는 것 말이다. 



친구

기술로 시작한 관계는 일단 시작은 되더라도 기술이 녹슬거나 열정이 사라지거나 내 뜻과는 다른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면 서서히 변한다. 반면, 유지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밋밋하거나 덜컹거리더라도 길고 가늘게 이어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이성을 만날 때 항상 나를 표현하기보다 기술로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상대방이 좋아할 법한, 혹은 나를 스스로 낮추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인연을 오래 끌지 못했고 상대는 다른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다… 특히 대학생 시절 첫 소개팅 때 나의 모습을 최대한 숨겼다. 이미 연애 이론은 빠삭할 대로 빠삭해져 연애 한번 못해본 놈이 연애상담을 할 정도였다. 첫 소개팅 때 나는 나의 최대한 갈고닦은 연애 이론 매뉴얼대로 이성의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결과는 보기 좋게 밥만 먹고 헤어졌다. 웃긴 건 운동복 입고 소개팅하러 간 지인이 2주 뒤에 여자 친구라고 사진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내 연애 이론에 첫 소개팅에 운동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그때서야 깨달았던가. 


사람 관계가 참으로 이상하다. 어떤 사람은 코드가 정말 잘 맞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긋난다. 이전에는 어떻게든 나를 그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보여주게 된 것 같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나니 진정 나를 만난 것 같다. 


재미있게 놀지 않아도 괜찮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길에 어느새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게 진짜 친구 아닌가. 단, 진짜 친구라면 두 사람 모두 비슷하게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어야겠지.  



미움받을 용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하고만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미움 좀 받으면 어때. 나 좀 봐. 아무렇지도 않아.

공감이 안 되면 공감 안 해도 된다. 이해가 안 가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정 힘들면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하면 되니까. 얼마나 간단한가. 


한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대히트를 친척이 있다. 나도 대학생 4학년 시절이라 그 책을 바이블처럼 끼고 살았다. 책을 안 읽던 친구들 가방에도 한 권씩 있을 정도였다. 나를 포함해 한국 사회가 남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나를 숨겨온 것 같다. 정작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도 모른 채 남들의 눈에 맞추어 살아온 게 아닐까. 나에 대한 주체성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모든 관계에 갑과 을이 존재하면 안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형성된 갑과 을은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미움 좀 받으면 어때.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나?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나는 괜찮지 않다.” (와이즈베리 출판)에서 칭찬과 사랑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칭찬과 사랑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칭찬은 특정한 특성 몇 가지를 향한 것이지만 사랑은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아우른다. 따라서 아무리 칭찬을 많이 받더라도 나머지 부분은, 즉 존경과 수용, 그리고 애정을 향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결핍된 부분을 늘 다른 곳에서 메워야 한다.” 

싫어하는 것과 사이좋게 지내기 

따지고 보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싫어하는 데도 이유가 없다.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감 가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칭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인정 욕구가 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다. 특히, 칭찬을 한 타인의 존재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그 기쁨은 더욱 크다. 반대로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주체성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남의 평가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평가는 타인의 생각일 뿐인데. 나는 항상 나의 결핍을 타인의 인정으로 메우려고 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싸운 적이 없어요.

가끔 “우리는 싸운 적이 없어요”라고 자랑하듯 말하는 연인이나 부부를 보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고 싶다. 애정이란 분노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산다는 말은 그 생활에 애정이 조금만 들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잘 싸우는 사람일수록 잘 사랑한다. 싸움이 겁나서 말을 아끼게 되는 사람에게는 결국 마음도 아끼게 되니까. 서로를 이해하기만 하는 관계란 서로 이해할 만큼의 애정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첫 연애를 했을 때다. 20대 초반에 세상 물정도 모를뿐더러 이성에 대해서 호기심만 가득했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였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약간의 다툼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 나는 단둘이 술 한잔하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자 친구도 그제야 아주 약간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극히 일부라 생각했다..) 나는 관계가 더욱 좋아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만 여자 친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리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서. 


그래서 우리는 싸운 적이 없다는 커플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아니에요. 분명 한쪽은 꾹 참고 있는 거예요. 본인만 모를 뿐. 지독히도 싸우는 친구는 (실제로 나와 처음 봤던 자리에서도 싸웠다.) 벌써 5년째 연애를 잘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싸우지만 말이다. 싸운 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라 생각한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관심이 더 무서운 법이다. 



가족이란 모르는 것 투성이

엄마가 병들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노보노: 나는 아빠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걸까?

고래 장로: 응, 몰랐지. 앞으로는 더 모를 거야.

                눈에 보이는 거랑 지금 아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지.

                그럼 다시 눈에 보이는 거랑 아는 것만 알면 되는 거야. 

               그것 역시 진짜가 아니지만.

보노보노: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돼?

모르면 알아가면 된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그게 꼭 진실인 것은 아니다. 

나라도 솔직해지자. 나부터 먼저 

엄마를 ‘엄마로서의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엄마’로 대하면 엄마 역시 나를 ‘딸로서의 나’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딸’로 봐주지 않을까. 


취업이 결정되고, 아버지와 단 둘이 교토와 오사카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바쁜 업무 때문에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하고 매번 아버지를 제외하고 여행을 많이 갔었다. 이번에는 큰 결심을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비운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아버지와 단 둘이 떠난 여행이 20대 후반이 된 지금이 처음이라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첫날 저녁밥을 먹고 나서 호텔 앞의 하천을 거닐었다.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나 조깅을 하며 운동하는 강변공원이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나게 된 연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여자 친구 문제로 잠깐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연애스토리를 들으면서 내가 알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몰랐던 아버지를 만나니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이제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아들이 아니라 어엿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나를 대해 준 것 같다. 


인간관계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짧은 세월을 살면서 나라는 뿌리가 강해야 남을 만나는 것도 강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법부터 시작해보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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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1 - 다른 사람들하고도 같이 사는 법
파트 2 -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 
파트 3 - 인생에서 이기는 건 뭐고 지는 건 뭘까
파트 4 - 솔직해지는 순간 세상은 조금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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