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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Jun 26. 2022

사랑에 익숙해지려 한다.

Y. Y. Massart, <사랑해!>, 2022년 6월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망상 속에도 언제나 약간의 이성이 들어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나는 <너>에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너>가 떠난 후, 혼란한 감정 속에 얽매여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는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뒤로 한채 나는 나를 사랑해주어야만 한다고.


나는 말한다. 나를 사랑해도 될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망상이 나를 괴롭힌다. <너>의 죽음에 나는 어떤 역할을 했길래, 나는 왜 나에게 죄를 묻고 있는지.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아무리 외쳐도 침묵으로 응대하는 <너>에게 화를 내야 할까? 혼자 빙빙 도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다시 말한다. “아니야, 아니야. 미안해.”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은 과연 누구한테 미안한 것일까? <너>에게 아님 나에게?


<너>가 떠난 후, 나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늘 주눅 들어 살고 있다.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미안해"란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슬퍼하는 것도 미안하고 우는 것도 미안하고 나의 우울이 전염될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 “힘들었지 애썼다.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느라 힘들었지, 그거면 되었다.”라고 말하며 살라고 많은 책에서 조언한다. 남은 인생 별일 없이 잘 살면 된다고 말하며 가만가만 다독이고 싶다. 멀리서 <너>가 나를 응원한다고 굳게 믿고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


니체는 말했다. ‘용기는 큰 소리로 웃고 싶은 것이다.’라고. 내 마음의 시선을 고스란히 내 앞으로 끌어모으는 용기가 필요하다. <너>에게 향했던 기준점을 나에게로 되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망상보다는 더 많은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 큰 소리로 웃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 용기, 더 이상 <너>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이란 열차는 후진할 수 없다. 때론 멈추고 싶을 때도 있지만 개개인의 종착지를 향해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내 열차의 속도는 나에게 맞춰 운행 중이다. 그 안에서 나는 단 5분이라도 <너>가 아닌 나를 사랑하고 아껴 줄 것이란 망상에 빠져 살아보려 한다. 나는 이 사랑에 익숙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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