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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Nov 16. 2022

꿈에서 깨어나 바로 지금 여기!

소호 단상_7


   '꿈'이란 단어는 참 재미있다. 하나의 단어가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면서 꾸는 꿈, 정말 이루고 싶은 소망,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헛된 생각, 이 모두가 꿈이라고 불린다.  

이루고 싶은 꿈과 현실화될 수 없는 몽상이 똑같은 단어로 지칭될 수 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같은 단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그 함의(含意)가 물밑에서는 서로 통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꿈을 꾸는(꿈을 꾸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니만큼 어떤 꿈이든 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대개는 여러가지 꿈들이 대추나무에 대추 열리듯 주렁주렁 열려있는 마음밭에서 살아간다. 버킷리스트나 소원을 말해보라 하면, 누구나 대여섯 가지 쯤은 술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마음 속 대추들은 살아가는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걱정과 불안과 사심의 알맹이가 되기도 한다. 젊은 날들이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다면, 이 대추들이 정신과 마음을 뒤흔들어놓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이들면서 점차 평온해지고 지그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면, 마음밭을 가지치기해서 불필요한 대추들을 떨군 덕분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대추들이 삶의 목적이나 핑계가 돼 주었다면, 떨어지는 대추와 빈 가지들이 마음자리를 쓸쓸하고 공허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색깔 풍선처럼 알록달록한 소망들이, 꿈들이, 기대들이 사라져버렸으니까. 어느 시인의 싯귀에서처럼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자. 내 삶에서 기대나 소망, 꿈 같은 '허무맹랑한' 것들이 사라진 대신 나는 즉각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무언가를 소망하고 기대하면 그것에 얽매이고 마음의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이제는 삶이라는 것이 기대나 꿈이나 소망이 아닌 곧바로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희망'이란 것은 항상 내일로 보류되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소원이란 헛된 꿈에 불과하며, 내 삶을 진짜 살아있는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당장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를 바라봐주는 빛나는 눈은 어디에 있는가. 바깥에서 반짝거리는 눈은 허상과도 같다. 진짜 빛나는 눈은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꿈이 여기 없다면 꿈을 어느 자리에서 찾을 것이며, 나 자신이 이상형이 아니라면, 이곳이 이상향이 아니라면, 누구에게서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것인가.

  꿈을 떠나는 대신 나는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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