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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Jan 19. 2024

눈밝은 애인아_ 2

너를 비밀로 하고 싶어라

애인아, 방금 누군가의 책 발간 소식을 들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정말 '미친 듯이' 책이 쏟아져 나오는구나.

다들 책을 내고 또 내고, 쉴새없이 찍어낸다.

네가 매일 수천, 수만의 얼굴로 쏟아져나오고 있구나.


네가 애인 되면 자랑도 하고 싶어지겠지.

꽃단장 해서 내보이고도 싶어질 거야.

사람들은 너를 미인대회에 내보내려 해.


참 이상한 일이지..

너를 알고 지낸 지 30년, 나는 그때부터 너와 한솥밥을 먹으며 살아왔는데 사람들은 등단 여부를 물어보더라. 그래서 등단을 하니 책을 냈느냐 물어보네. 아무것도 없어요 하기도 민망해, 10년도 더 전에 펴낸 동화책 얘기를 했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놓으면 몇권의 책이 되고도 남을 텐데, 그렇게 잡지에 실었던 글들은 모래인형처럼 부서져버렸어.

아, 그래서 사람들은 기어이 묶으려 하는 건가?

부서지기 전에 꽉 묶어두려고?


하지만 책은... 책은 증명하지 못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 건, 1권을 내든 100권을 내든 마찬가지라는 거야. '진화'란 개념은

글쓰기에는 없는 것만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글이 더 훌륭해지는 건 아니니까.

글은 글쓰는 사람을 명확하게 비춰주는데, 사람은 잘 안 변하거든. 그래서 글도 변하지 않지. 그건 글쓰기의 어떤 기술로도 감춰지지 않더라고.


그래서 애인아, 난 네가 무서워지더라.

고스란히 드러나니 한 점도 숨길 수가 없잖아.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는 네가 더 좋기도 .


어떤 이들은 너를 장신구처럼 달고 다니고,

또 어떤 이들은 '작가님' 소리가 듣고 싶어 목이 메이지. 그런데 이제 난 가끔 무서워진다. 시인이라는 호칭 말야.

아무렇게나 대충 휘갈겨 쓰고도, 시라 우기면

시가 되지만 똑같이 시의 자리에 있는 어떤 시는 아우르는 경지가 아득해 정신이 번쩍 들곤 하지.

그 모두를 다 '시'라고 부르니, 어찌 자랑스레 시인이라고 깃발을 흔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한 것을.


애인아, 나는 너를 어느 오두막에고 숨겨두고

몰래몰래 혼자서만 만나면 좋겠네.

부끄럼도 없이 맨발로 뛰어다니며

네 손을 잡고 그렇게 살았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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