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 단상_1
내가 사는 동네 어디쯤에는 몸과 정신이 불편한 사람이 살고 있다. 오며 가며 가끔 부딪치는 그는 늘 휠체어에 앉아 있으며,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항상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다. 나는 그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한참 멀리서부터 그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아니 길에서 마주치지 않고 집에 앉아 있을 때도 그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조용히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소리를 지르면서 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기 어렵다. 네 음절 정도의 소리를 목청껏 외치는데, 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길을 가는 내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처음에 깜짝 놀랐던 나도 이 동네에 산 지 1년 남짓 되어가는 지금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이제 놀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체적인 고통에서 그가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고 있으며,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그의 몸이 고통스런 상태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여겨지는 이쪽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정상이라고, 또는 기준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한 발짝 벗어난 어떤 지점에서 그는 이쪽 세상을 건너다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나는 그의 소리를 들으면,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정신이 차렷 자세로 화들짝 깨어나는 것만 같다. 누군가 “너는 지금 어디 서 있지?”하고 되묻는 것만 같다. 계절과 시간과 사람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된다. 궤도를 벗어난 그의 정신은 기우뚱하게 이 세상을 보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의 정신은 얼마나 똑바로 서 있는 것일까.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모두 기우뚱한데, 그는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뿐이고 우리는 드러나지 않아서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그가 경고하는 소리. 죽비처럼 정신을 깨우는 그의 소리를 들으며, 그가 그렇게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댈 만큼 계속 건강하기를 속으로 빌었다.
당신도, 우리도 무탈하게 이 삶을 건너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