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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원 작가 Aug 24. 2020

고통을 견디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아름답다

고통을 견디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아름답다

1425년 세종대왕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때로는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해주시오."
이 짧은 글에 우리가 여전히 그를 기억하며 존경하는 이유가 모두 담겨져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경청해서 마음에 담았으며, 결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아니, 순간적으로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앞서 말한 것처럼 때로는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자신을 바꿔 나갔다. 그는 세상에 자신을 비판할 자유를 허락했고, 그로 인해서 사는 내내 흔들리며 살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고 본래 위치로 돌아왔다. 비판에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세종대왕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판을 허용하며 자신에게 주는 상처를 허락했지만, 사는 내내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고 다시 그 무거운 왕관을 썼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악플로 삶을 마감하는 현실을 논하며, 악플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글을 하나 쓰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꼭 달리는 댓글이 하나 있다. 정말 악플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댓글이다.
“악플도 관심이죠. 서로 이해하며 삽시다.”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긴 힘들다. 1초마다 달리는 최악의 댓글과 도저히 밖으로도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그 악플을, 수많은 가짜 계정을 이용해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살기의 언어만 주는 것을 관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라고 묻는 것도 의미가 없다.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짐작할 수 없는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세종대왕은 몸이 좋지 않았고, 다양한 오해와 편견의 시선으로부터 지탄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근거가 없는 모함일 때가 더 많았지만,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어제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냈다. "그것은 틀렸다."라고 반박하거나 상대를 짓밟으며 느낄 수 있는 통쾌한 감정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겨내야 한다. 나는 몸이 매우 나쁜 상태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날에도 평소처럼 원고지 50매 분량의 글을 썼고, 그 글에도 악플이 달렸지만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내가 죽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아니 죽어 사라져도 안 좋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에 흔들리지 않는다. 심각한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하나하나 일일이 반응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나의 인생은 소중하며 글을 쓰며 살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아깝기 때문이다. 사색하며 쓰는 시간에 내 인생 전부를 투자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누군가 아주 잠시만 자신을 비난해도, 다른 사람과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마치 세상을 부술 것처럼 폭발하면서, 타인에게는 도덕과 배려 그리고 기품을 요구하는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자. 남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작가는 자기 생각을 쓰고, 화가는 자기 생각을 그리면 된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세상에 펼치면 된다. 착하거나 선할 이유가 없다. 그런 억압에 시달리지 말라. 모든 억압은 그 사람을 더욱 고통에 가둘 뿐이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라. 당신은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세종대왕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살겠다는 그 목표를 평생 지켜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그저 자신의 일을 해낸 것이다. 언제나 당신의 일을 하라. 당신이 만드는 제품이나 글, 조각이나 온갖 작품에는 당신이 아프거나 힘든 이야기는 적을 수 없다. “아프지만 쓴 책입니다.”, “성대가 망가졌지만 애써 부른 노래입니다.” 위로는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위로를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면 고통의 흔적은 지우고 당신의 일만 하라. 고객과 소비자는 당신의 이야기를 알 수 없으며 애써 알릴 이유도 없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다시, 언제나 그저 당신의 일을 하라. 잠시 멈춰 위로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당신의 일을 하라.
"아픈 만큼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힘든 만큼 고통을 안아줄 수 있다.
그러니 답답할수록 너의 일을 하라.
고독할수록 너의 일을 하라.
혼자 남겨질수록 너의 일만 하라.
너의 일이 너의 삶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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