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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Sep 24. 2015

언제부터 였을까 '아지트'

마음의 공간 '아지트',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마음을 준다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내어준 대상을 잃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언제나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2015년 봄, 역삼동의 어느 골목길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속 공간에는 나도 모르게 작은 푯말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마음을 내어 주었음에도 결국 그 대상을 잃게 되는 상실의 반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대상에 쓰이는 것이 어색할 뿐,
이별과 헤어짐은 언제나 낯설다






내게 그런 상실감을 가장 많이 안겨준 것은 사람이 아닌 '공간'이었고, 오랜만이든 금세든 다시 찾아간 내 공간이 사라졌을 때만큼 아쉬웠던 적도 없었다. 재미있는 점은 연인과의, 친구와의 이별을 통해 자라난 두려움을 안고서도 다시 새로운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나 역시 상실의 반복을 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담긴 공간


지난 6월 말, 생애 첫 이직을 하게 되었다.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상암동에서의 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기에 떠나는 순간의 아쉬움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짐이었지만, 점심을 먹은 후, 퇴근 길에 들렀던 우리만의, 나만의 공간을 자주 접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 내게는 큰 아쉬움이었다. 함께한 시간들이 하나, 둘 섞이고 쌓여 있는 만큼, 누구보다 큰 위로와 힘이 되어준 만큼 어느 하나 가벼운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가을내내 들렀던, 누리꿈스퀘어 1층의 어느 카페





쉽게 만날 수 없기에 더 간절한 그 곳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답을 쉽게 알 순 없어도 새로운 환경에 접어들었을 땐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무 살 갓 대학생이 되어 학교를 다닐 때에도, 군인 신분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에도, 인턴으로 근무를 하면서도 나는 늘 나만의 아지트를 찾았고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2012년, 서촌의 어느 카페. 이제는 더 이상 드립커피를 맛볼 수 없고, 남겨두고 온 추억들을 만날 수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지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그저 '분위기가 좋다'라는 것에서, '바라만 보아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들'이라는 기준으로 바뀐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것들이 점차 벅차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 간절히 그 장소들을, 나만의 아지트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휴지가 필요한 순간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과 한 번은 꼭 마주치게 된다. 특히 오전보다 오후에 더 잦은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 만남이 잘못된 만남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의 리듬은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만다. 툭툭, 뚝뚝 부자연스럽게 끊기고 앞과 뒤가 쉬이 연결되지 않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기에 우리에겐 '쉬는 시간이'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곳이 다름 아닌 아지트이자,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여름, 강남의 어느 카페




휴지(休止)라는 말이 있다. 연주를 하는 도중에 일제히 흐름을 멈추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이 쉼이 이전과 다음을 위한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끊어짐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하루 하루도, 우리 시간의 흐름도 연주와 휴지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하기에 나는 그토록 휴지를 위한 공간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앞선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곳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준비 장소





가 필요한 순간


가능하다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기억하고 싶다. 차곡차곡 쌓아두고 정리해서 불쑥 튀어나오지 못하게끔, 내가 원하는 시점에 정확히 끄집어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여러 기억들을 분산시켜 저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아지트를 필요로 했다. 소중한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은 곳이라면, 그래서 실제로 어떤 것들을 쌓아둔 곳이라면, 그 어느 곳 보다 나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이 될 테니 말이다.





2013년 가을, 가회동의 어느 카페





평소에는 그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출입문이
낯선 곳에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게끔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낄 때,
그 순간이 우리가 그토록 필요로 하는 '아지트'를 만나는 때가 아닐까?




공간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사람이다.   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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