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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Mar 11. 2021

팀과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을 주도적으로 찾아내는 방법

내게 할당된 일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기



회사의 첫 번째 기획자로 시작한 일


아쉽게도 위자드웍스에서 반년 넘게 개발, 론칭한 서비스가 양도되면서 또 한 번의 선택지를 받아 들게 되었다. 결국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창업이 아닌 구성원이자 기획자로 첫 경험을 마친 뒤 나는 두 번째 스타트업 ‘오드엠'으로 이직했다. 스마트폰 초기, 다양한 앱 정보와 오늘만 무료 앱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팟게이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광고 플랫폼 ‘애드픽'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전체 인원은 첫 번째 스타트업 보다 2배 많았지만, 나는 이 곳의 첫 기획자였다. 내가 일해온 ‘기획' 관련 업무 방식을 자연스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기획자 없이 오랫동안 일해온 조직에서 기획 업무를 일정에 포함시키고 전반적인 과정에 기획이 필요한 이유를 끈질기게 증명해야 하는 점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기존 업무 방식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기획자인 내가 주도적으로 업무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기회가 적어지면 시간이 남게 되고, 남는 시간에 해야 할 업무가 떠오르지 않고 그럼 자연스레 의미 없는 시간이 연달아 이어지는 상황을 마주 할 수 있을 거란 두려움도 있었다.


실제로 위자드웍스에서 나는 업무에 따라 시간을 할당하고, 변수를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상태로도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도, 한 번씩 시간을 그대로 흘러 보내곤 했다. 두 번째 스타트업에서는 조금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고, 남는 시간보다 시간이 딱 들어맞는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도 하나의 회사다 보니 사람을 뽑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확히는 일반 기업보다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기획자는 공고를 통해 어떤 서비스를 담당하게 될지 1차로 확인, 면접을 통해 2차로 확인할 수 있고 원하는 역량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만 입사 후 업무를 시작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기본적인 가이드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어떻게 일을 시작할 건지 정의하는 온보딩 과정이 중요하다. 한 회사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했다면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과 정리가 상대적으로 수월 할 수 있지만 입사 초기에는 넓은 범위에서 할 일을 살펴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관찰과 미팅을 통해 업무 리스트 작성하기


나는 우선 기존에 만들어진 자료들을 확인하거나 미팅 등 팀원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 속 관찰에 집중했다. 업무 방식을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기획이 필요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1주는 자연스레 업무 과정에 참여하고, 다시 2주는 ‘03.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서 소개한 구성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기존 업무 방식에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 기획자에게 바라는 점 등을 정리했다. 이를 통해 나는 몇 가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구성원들이 기획자를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어디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기준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3주 후, 나는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내가 진행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적었다. 리스트가 꽤 많았지만, 홀로 우선순위를 산정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 전체 회의 시간의 일부를 활용,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 자리에서 대략적인 일정을 입력했다. 단순 나열되어 있던 업무 리스트가 이제 우선순위와 함께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까지 정해진 것이다.


최초 작성 시 업무 리스트

    스토리보드 문서 템플릿 제작  

구성원과 논의 후 업무 리스트

    [우선순위 상] 스토리보드 문서 템플릿 제작 (~2021.08.12)  

          (요청사항) 기능 정의 문서 제작, 기획 시 포함 (일정 확인)    


공유 후 구성원과 추가 논의를 하지 않았다면 하나를 완성 한 뒤 비슷한 업무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추가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업무들을 다시 쪼갤 수 있을 만큼 쪼개야 한다. 그래야 세부 업무에 대해 구체적인 시간을 할당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추가 업무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최종 공유한 업무 리스트

    [우선순위 상] 기획 업무 관련 문서 템플릿 제작 (~2021.08.13)  

          스토리보드 문서 템플릿 제작 (~2021.08.10)    

          기능 정의 문서 템플릿 제작 (~2021.08.12)    

                추가 - 주요 지표 확인용 스프레드 시트 제작 (~2021.08.13)      


스토리보드 문서 템플릿 제작이 각각 3개의 세부 업무로 쪼개졌고, 최종 일정 역시 변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부 업무는 슬랙 등 구성원들이 볼 수 있는 채널에 공유한 뒤 추가 의견이 없으면 개인 업무 노트에 작성했다. 노트에 작성 시, 각 업무를 언제, 얼마큼 진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시간을 할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투두 리스트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창업 시, 나는 투두 리스트를 종종 스스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만족하는 수단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이만큼 일했으니, 잘 될 거야- 라는 합리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두 리스트를 작성할 때 정말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무리하게 시간을 할당하게 되면 업무가 계속 밀릴 수밖에 없고, 이후에 처리해야 할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할 일에는 욕심 보다 우선순위에 따라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작성하고, 포함되지 못한 업무는 별도 노트에 작성했다. 별도 노트에 작성된 일들은 혹여나 시간이 남거나 비는 순간에 확인 후 진행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노력했다. 뜬금없는 업무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낮아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기에 남는 시간에 바로 진행하기 좋은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비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업무의 연속성이 생겨 연관된 업무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부사수들이 초반에 늘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뭘 하면 좋을까요? 다. 무언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순간에 튀어나오는 마음의 소리다. 그럴 때 나는, 입사 초기라면 위의 경험을 들려주고,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상황이라면 지금까지 한 업무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함께 전한다. 주도적이라는 것이 꼭 모두를 위한 당장의 업무일 필요는 없고, 다음에 하게 될 업무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의 자유도는 개개인이 어떻게 준비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업무 강도를 계속 강하게, 빡빡하게 가져가면 쉽게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루와 주 단위로,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 진행한다는 것은 결국 팀과 나를 잘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보자.





2023년 07월, 제 첫 도서가 출간되었어요. 제목은 ’10년 차 IT 기획자의 노트’입니다. 브런치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수 없이 일하는 어려움을 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분들이 덜 느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9개 노트(기록)를 바탕으로 기획과 PM의 주요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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