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휴먼터치
재작년, 날이 추워질 때쯤 집에 두툼한 우편이 와있었다. 발신자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력과 함께 10년의 후원을 감사한다는 편지이자 증서가 있었다. 함께 있던 지인은 “10년이나 후원했어?”라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10년이란 꾸준함이 주는 느낌은 단순히 정기 후원한 나를 선행 꽤나 한 이로 보이게 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 별말 없이 달력을 펼쳐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첫 후원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겨울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구역을 거쳐갔고 그 근처에선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저 호기심에 살펴보았다. 안내하는 이가 말을 걸었고 잠시 서서 아이들 사진이 가득한 보드 판넬을 보며 설명을 들었다. 뜨개질을 못 하지만 나는 신생아 모자 키트를 가방에 고이 담은 채 집에 왔다. 오는 길에 묘한 설렘이 있었다. 얼떨결에 신청한 5000짜리 후원은 따뜻했다.
달력을 보며 오랜만에 내가 작은 후원을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신경 쓸 것이 넘치는 일상이 이어져 곧 잊혀졌다. 내게 그 후원은 이따금 생각나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 바쁘진 않지만 뺄 것 없이 꽉 찬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준비하고 세탁물을 찾았다. 여러 단톡에도 열심히 답을 했고 스스로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씻고 누워 멍하니 유튜브도 보았다. 여유가 있으면 운동도 했다. 더하면 더했지 정말 뺄 건 없었다.
정기후원은 이런 생활에서도 편리하게 미덕을 행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었다. 한번 신청해 놓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를 위해 꽉꽉 채운 생활을 이어가도 문제없었다. 후원을 몇 달 동안 신경 쓰지 않는 내가 10년짜리 증서를 받았다. 편리한 세상이다. 무언가가 빠졌지만 말이다.
우편 내용물이 잊혀질 무렵 한 문자를 받았다. 이번 달 정기후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확인하니 정기후원 계좌가 잘 쓰지 않는 계좌로 등록되어 있었다. 며칠 전 감사 증서를 받은 일이 함께 떠올랐다. 내가 받은 처음 후원했을 때 느꼈던 따뜻한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아마 일상 속에 파묻혔나 보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체 문자를 보고도 웃음 지을 수 있으려면 한 줌의 기억이 필요하다. 받은 따뜻함을 기억하는 것은 후원을 퇴색시키지 않을 최소한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정기후원 주기인 한 달에 한 번 정도도 좋다고 본다. 사실 이건 사람 온기를 유지하고픈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에서 얼른 계좌 정보를 수정했다. 수정하면서 내 조그만 후원은 따뜻했을까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 떠올리는 온기라도 그들에게는 더욱 따뜻하게 다가가길 바랐다. 정보 수정 도중 정기후원 금액란 옆에 증액 버튼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레 증액 버튼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