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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Apr 10. 2023

나이브한 달리기

달린다. 늦은 오후의 주말, 오랜만에 공원에서 조깅을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다양한 사람 사이를 지나면서 트랙을 달렸다. 몸이 살짝 무겁다. 이렇게 달린 지 얼마나 된 건지, 뭔가 예전 같지 않다. 몸이 살짝 삐걱대는 걸 느끼면서 다리를 열심히 번갈아 휘젓는다. 일정한 달음질, 복식 호흡, 그리고 허벅지에 힘주는 걸 잊지 않는다. 체중이 만드는 충격, 그걸 무릎이 온전히 감당하게 해선 안 된다. 연골은 소모품이라고 했어, 무릎을 잘 보호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석양과 사람들로 가득 찬 공원을 빙글빙글 돈다. 



조금씩 숨이 찬다. 아직 충분히 달릴 만하다. 계속 적당히 열심히 달린다. 기분 좋은 숨, 여기서 속도를 더 올리면 벅찰 것 같다. 이어폰에선 스트록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스트록스의 음악에 달리는 템포를 맞춘다. 이 정도, 딱 이 정도가 좋다. 나는 이런 템포를 좋아한다. 너무 열정적인 템포의 달리기는 선호하지 않는다.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것,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것, 없는 힘을 짜내어 이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그 순간. 그걸 몸으로 겪는 걸 썩 좋아하진 않는다. 나는 참 나이브한 사람이다. 



나이브한 사람이라고 해서 나이브하게 살 순 없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달려야 했다. 예전 군대 훈련소에 막 들어갔을 시절, 동기들과 함께 달릴 때면 나는 항상 속으로 되뇌었다. 아직 괜찮아, 아직 괜찮아, 이 정도 숨 가쁨은 괜찮아. 물에 빠진 사람처럼 흐트러진 호흡을 하면서도, 버티면서 달렸다. 임관을 위해 모인 600명의 청년,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린 달성해야 할 목표가 참 많았다. 체력도 그 목표 중 하나였다. 우린 매일 4.5km를 달렸다. 목표는 3km를 12분 30초 안에 주파하는 것이었다. 체력 등급에서 특급을 받기 위해, 나는 매일 달렸다. 



나는 달리기를 못 하는 편이었다. 당시 동기 중엔 괴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선수가 3명이나 있었고, 그에 준하는 운동 능력을 가진 이들 역시 꽤 많았다. 나는 조금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그들과 달리면서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었다. 달릴 때는 앞사람 등만 쳐다봤다. 내 목표는 그 등이었다. 거친 숨과 끈적한 침을 뱉어대면서, 그 등이 멀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몇 개월을 달리니 나도 동기들과 같은 특급이 되어 있었다. 물론 특급에 도달했다고 해서 여전히 달리기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 국대 중 한 명은 3km를 9분 30초대에 끊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사람이 맞는 건지 참. 



조깅할 때면 항상 그때의 달리기가 생각난다. 힘들어서인지, 나름의 한계를 극복한 기억이어선 지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달린다. 나는 요즘 그렇게 달리면서, 살고 있다. 아직 괜찮아, 아직 괜찮아하면서 말이다. 그게 정말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되뇌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적당히 달리는 걸까, 최선을 다해 달리는 걸까. 애초에 열심히 사는 것이란 뭔가 싶다. 



지난주 누군가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데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 좋은 것도 아니야.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그리 잘 사는 것 같진 않은데, 사실 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근데 그게 괜찮은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대답하고 나니, 내 말이 간결하지 않은 걸 깨달았다. 나는 변명을 했던 걸까. 아니 그래서 행복하냐고. 



내가 했던 답을 생각한다. 그리고 달린다. 사실 달리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살짝 미세먼지가 낀 흐린 날씨다. 덕분에 지는 해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회색빛이 잔뜩 낀 석양과 선명한 해를 보면서 달린다. 조금 더 속도를 높여본다. 숨이 벅차오른다. 숨이 흐트러진다. 아직 괜찮은... 건가 하며 더 달려본다. 점점 숨이 몸을 따라가지 못한다. 멀어진다. 스트록스의 음악은 계속 일정하게 흘러나온다. 나는 어느새, 트랙 한가운데서 몸을 숙이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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