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의 생일이었다. 사실 그 친구의 생일은 지난주였지만 날짜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생일에 관한 당연한 생각이 꽤 옅어졌다. 생일 당일에 꼭 축하를 주고 받아야 한다거나, 그날은 엄청 행복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친구 생일은 일종의 건수다. 밥 먹고, 술 한잔할 수 있는 좋은 건수. 개인적으로도 여타의 건수보다 생일을 빌미로 만나는 걸 좋아한다. 이직이나 결혼, 집 등 머리 아픈 얘기가 굳이 오가지 않아도 된다랄까. 순수한 축하와 적당한 근황 나눔을 위해, 동우와 신촌의 한 중국집에서 만났다.
적당히 매운 요리를 시켰다. 나도, 동우도 매운 음식을 잘 먹진 못한다. 그래도 맥주 마실 땐 적당히 자극적인 맛이 있으면 좋다. 마라샹궈를 시키고, 맥주잔을 부딪히며 동우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래서 개강하니까 어때?
동우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늘어놓는다. 동우는 이제 막 학기를 보내는 13학번이다. 지금 듣는 수업 중 1학년 수업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동우는 10학번 차이 나는 애들과 수업을 함께 듣는다고 한다. 교수님이 출석 부르면서 자신의 학번을 오타라고 여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다른 고등학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동우 재학 폼 미쳤다.
동우가 23학번과 같이 수업을 듣게 된 까닭은 시험 때문이었다. 동우는 군대를 다녀와서 쭉 피트(PEET) 시험을 준비했다. 한 6~7년 정도 준비했던 것 같다. 작년을 끝으로 피트 시험은 폐지됐다. 동우는 작년 시험 당일 열이 꽤 났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험에 응시했고, 다음날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당연히 시험은 말아먹었다. 7년간 도전한 시험, 그 마지막을 말아먹은 느낌이 어떨까. 찜찜함과 답답함 등의 온갖 끈적한 감정들을 섞어서 가슴을 틀어막은 느낌일까. 아니면 도리어 시원하고 허무한 느낌일까. 그 기분이 살짝 궁금했지만 깊게 알고 싶진 않았다.
동우는 그 7년간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큰 힘이 돼줬다고 했다. 2학년 때, 길을 가다 동우가 번호를 물어봐서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동우는 그렇게 대학 와서 첫 연애를 시작했다. 상대 역시 첫 연애라고 했다. 그렇게 둘은 7년을 함께했다. 그사이 여자친구는 직장인이 되고, 동우는 별로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굳이 꼽자면 살이 좀 찐 정도? 그게 연애 때문인지, 시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 둘은 동우가 마지막 시험을 치른 뒤 헤어졌다고 한다. 전화로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찜찜한 마무리, 동우는 마무리를 잘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앞선 동우의 7년은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여자친구와 시험. 그 둘을 떠나보낸 동우에게 지금 뭐가 남았을까. 하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막연한 짐작은 아니다. 동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여러 실패를 겪고 있지만 실은 무난히 살 것이라는 걸 말이다. 동우는 병원 원장 아들이니까. 형편 걱정 없이 긴 시간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알바 하나 하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나와 만날 때 항상 자신이 밥을 산 것도, 그런 환경이 뒷받침되어 그렇단 걸 충분히 알고 있다. 동우는 지금, 다음엔 뭘 해볼까 천천히 생각 중이다. 조급하게 결정하진 않을 거란다. 초조하면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면서 말이다.
“너가 보기엔 어때? 내 삶이 어떤 것 같아?”
“글쎄, 별문제 없이 사는 것 같은데, 고민이 없어 보이진 않아. 충분히 씁쓸해 보여.”
“그게 맞는 것 같다. 너는 잘 살고 있냐?”
“나야 항상 잘 살지.”
“그래? 근데 너도 뭔가 씁쓸해보이냐”
묘한 씁쓸함. 사실 정확했다. 동우는 맹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예리한 구석이 있다. 별 생각없는 것 같은데, 가끔 정확히 짚어낸다. 나는 글을 쓰다 와서 그렇다고 변명했다. 짧은 글을 쓰는 모임이 있는데 몰입해서 써보려 해서 그렇다고, 뻔한 치장을 했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씁쓸함 역시 내 삶에 충분히 존재했다. 하나의 이유 때문은 아니다. 31살, 나이에 비해 커리어가 낮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모은 자산이 충분치 않아서 일수도 있다. 지금 준비하는 직장 역시 부모님이 그리 좋아하실 것 같진 않은데, 참 큰일이다. 혼자 눈 귀를 닫고 사는 건 조금 할만한데, 사회와 발맞추려니 조금 어렵다.
동우와 맥주를 마시면서 삶의 씁쓸함에 대해, 고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런 맛도 있어야 삶이 더 다채롭고 사는 맛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삶은 늘 행복하진 않다. 그렇다고 늘 씁쓸한 것도 아니다. 적당히 버무리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적당히 매운 안주와 시원한 맥주가 조화로운 것처럼 말이다. 마라샹궈와 시원한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동우와 그런 얘기를 했다. 맥주잔과 접시를 계속 비우다 보니 혀가 얼얼했고, 오늘은 꽤 맵다고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