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기사 양산 부추기는 데스크, 회사는 뒤에 숨어...
그동안 ‘연예와의 연애’를 연재하면서 연예매체 그리고 연예기자들을 향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는 글을 적어보자 한다.
자극적인 제목, 말초적인 기사, 연예인의 사생활을 염탐해 조회 수를 한껏 올리는 모습을 보면 연예기자들은 틀림없이 ‘관종’(주: 관심종자의 줄임말. 타인의 이목을 끌면서 관심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게재하거나 제목 낚시로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 일 것 같지만, 그들 역시 사석에선 ‘돌+아이’도 ‘관종’도 아닌 평범한 우리네 이웃이다.
대한민국 연예매체의 기사들, 연예기자들의 취재윤리에 문제가 많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연예기자들이 처한 삼중고를 세 차례에 나눠 살펴보겠다.
#. 연예기자는 왜 조회 수 올리는 기자로 전락했을까
연예매체에 대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극적인 기사, 저질 기사, 낚시성 기사에 있다. 그리고 이런 기사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트래픽(조회 수)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포털 메인 섹션을 차지하고,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연예기사=조회 수 올리기 좋은 기사’라는 인식이 언론계 전반에 자리 잡았다.
이는 독립된 연예전문매체(주: 연예부만 있어 연예기사만 생산하는 매체, 이하 연예매체)나 종합지(일간지/경제지/방송사 내 연예부, 이하 종합지)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언론 매체들은 조회 수에 열을 올릴까? 먼저, 연예매체의 경우 종합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인지도가 떨어지는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다. 이에 광고수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연예매체들은 광고 유치를 위해 조회 수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광고주에게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보는 매체인 만큼 광고 노출이 잘 된다’고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지의 경우 광고 수주의 목적도 있지만, 조회 수를 올리면 ‘정론지’, ‘개념매체’ 코스프레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매체들은 조회 수를 근거로 ‘수많은 독자들이 찾는 신뢰도 1위의 매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조회 수는 대부분 낚시성 연예기사로 올린 것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회 수와 좋은 기사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낚시성 제목, 자극적인 내용,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단어나 이름을 이용해 날림으로 작성한 기사가 공들여 쓴 양질의 기사보다 조회 수가 더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기사를 써서 조회 수를 올리면 되지, 왜 좋은 기사 따로 조회 수 따로 생각하는 거야. 저질 기사를 쓰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조회 수 핑계 대는 거 아냐?’라는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연예기자들도 안다. 하지만 좋은 기사와 조회 수가 무관하기 때문에 연예기자들은 욕먹을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과거엔 기자 이름 대신 ‘ㅇㅇ뉴스 인턴기자’, ‘온라인 뉴스팀 기자’, ‘이슈팀’ 등 정체불명의 바이라인을 내세운 소위 ‘알바 기자’들이 이런 기사를 작성하고 일선 취재기자들은 현장 취재에 전념했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저급 기사 생산 역시 일선 연예기자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특히 연예기자들은 기자이기 이전에 해당 언론사 구성원인데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찍힐 수 없어’ 딱히 반발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연예기자는 사내에서 ‘조회 수 올리는 기계’ 취급을 당한다.
예를 들어 연예인과 타 분야 셀럽(Ex. 스포츠스타, 재벌, 정치인 등)의 열애설이 불거졌을 경우, 타 분야 기자들은 이 열애설의 진위 여부나 후속 취재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간혹 열애설 당사자 연락처를 연예부에 넘겨주는 경우가 있지만, 스캔들은 응당 연예 기자의 몫이다. 연예계와 타 분야 양쪽에 걸친 사건임에도 말이다.
또한, 연예인은 아니지만 유튜버, BJ,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인터넷 관종 등 유명인의 가십거리도 연예부 기자의 몫이다. 조회 수가 잘 나오는 인물들이라서,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 대응은 주로 연예부에서 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 대한 기사를 타 부서에서 다루는 유일한 경우는 연예인 관련 사건사고다. 음주운전 마약 성추행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에 한해서 사회부 기자들이 기사를 다루기는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회부 기자들은 최대한 ‘담백하게’ 사건에 대한 팩트만 전할 뿐, 이 이슈를 ‘후속 취재’, ‘탐사 보도’, ‘소속사 입장’ 등의 명분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논란을 위한 논란을 만드는 건 연예기자의 몫이다.
하지만 저질 기사 양산을 부추기는 회사측과 데스크는 연예기자를 방패삼아 뒤로 숨으며 계속 저질 기사 생산을 지시한다. 어차피 본인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닌데다, 조회 수로 자신들의 고과를 평가받고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이에 저질 기사로 인한 비난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게재한 기자들이 받을 수밖에 없다.
[연예기자의 삼중고 ③] 롤 모델 선배 어디 없나요?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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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순서
[연예기자의 삼중고 ①] 우린 조회 수의 노예인가요?(현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