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歡待)의 경험이 우리를 만든다
미국의 주거향유(?) 방식은 렌트 혹은 자가, 다.
우리나라의 전세, 형태는 없다.
미국은 목돈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유례를 찾기 힘든 신박한 주거계약 형태이다.
오늘은 내가 요즘 애정하는 챗GPT에 전세제도의 유래. 에 대해 질문하니 돌아온 기나긴 답변 중 일부다.
전세제도의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전답(전과 밭)과 같은 토지의 임대차 계약에서 보증금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택을 빌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정액의 보증금을 내고 그 대가로 일정 기간 동안 주거하는 형태가 있었습니다.
다른 국가에 유사한 제도가 있냐는 질문에 중국, 일본, 대만의 예를 들었지만
모두 보증금 혹은 디파짓, 중도금 형태의 제도였다.
고로 전세제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임대형태다.
다시 미국의 집,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국사람들은 일정금액의 월세를 내면서 12 혹은 14개월을 기본으로 하는 렌트계약을 한다.
계약기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월세가 올라간다.
재계약을 할 때도 월세는 다소 오른다.
물론 월세시세는 시장원리에 따라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기에 계약당시 나의 운세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법인이 관리하는 타운하우스, 즉 공동주택단지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가 수평형으로 운영되는 형태.
클럽하우스 즉 관리사무소가 주 5회 운영되고,
각종 커뮤니티 행사와 하드웨어 유지를 관리한다.
상주하는 메인트넌스 팀과 외주업체(여기서는 벤더라고 부른다)가 각종 집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수리, 보완해 준다.
관리가 용이한 대신 집이 좁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월세를 많이 내면 넓은 집에서 편리하게 살 수 있다.
그런 우리 동네 위에,
주로 자가형 주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다.
이사 왔을 때, 그 동네를 산책하며 우리가 미국에서 상상했던 바로 그 집들이 여기에 있구나, 했었다.
두 개의 차고.
나 홀로 집에(90년대 대히트 친 성탄가족 영화)에 나오는 메인도어
직사각형의 잔디밭과 울타리가 있는 뒤뜰(아마도 거기에 바비큐 시설이 있을 듯)
빨간 머리 앤이 이층 창문으로 내려다볼 거 같은 푸른 빛깔의 지붕과 하얀 바디를 가진 이 층집
그런 팬시한 집들이 모여있는 윗동네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지난여름에.
내가 걸어서 10분이나 걸리는 주거계약형태도 다른 동네에 누군가가 이사 온 것을 신속하게 파악한 것은
그 댁에 귀여운 딸들 덕분이었다.
예쁜 얼굴의 두 여자아이는 유니콘 날개가 달린 헬멧을 쓰고 핑크색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려왔다.
자매는 어느 날부터 우리 집 문을 똑똑 두르렸다.
문을 열면
캔 아이 플레이?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귀여웠다.
옳다구나. 우리 애들도 드디어 동네에 원어민 친구가 생기는구나!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상냥함을 연출했다.
하교 후 한국아이들과만 놀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 원어민 동네친구를 엮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기적의 계산법을 풀고 있어도
학교에서 가지고 온 숙제를 하고 있어도
독후감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소녀들이 문을 두드리면 나는 관대하게 아이들을 내보냈다.
그녀들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나도 그 가족들과 미국식 파티를 해보는 김칫국도 한 사발 들이키면서.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아니 한 2주 정도 후에
아이들은 더 이상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층으로 숨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거절하는 문장을 다양하게 구사해야 했다.
한국말로도 거절을 잘 못해 늘 후회하는 내 인생인데
영어로, 그것도 저 귀여운 소녀들에게 거절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니.
왜 그 아이들과 노는 게 재미가 없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뭔가 불편한듯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똑똑똑 똑똑!! 두유 원 어 빌 더 스노맨? 하는 소리는
나에게 공포의 음악으로 들렸다.
문 앞에 스크림 탈을 쓴 괴한이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초인종이 없는 집에 산다는 게
아파트 출입문 비번이 없는 주택에 사는 게
처음으로 두려운 날들이었다.
사생활을 보호받는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의 노크를 듣고
적성에 맞지 않는 거절을 하며 몇 달을 보냈다.
뭐. 세 번에 한 번은 우리 집에 들어와 놀기도 하고 또 우리 집 아이들이 나가 놀기도 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누군가의 노크를 맞이하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소녀들의 부모님은 아주 좋은 분이었다.
엄마인 JILL은 딸을 넷이나 키우고 있는 엄마임에도 늘씬하고 아름다웠다.
유머를 잃지 않았고 늘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들의 아빠도 늘 웃는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핼러윈 데이에는 바비분장을 하고 동네를 누볐다.
그리고 몇 주 전에 우리는 그 예쁜 가족이 초대한 토요일 11시 피자파티에 참석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었고
아이들은 입양아였다.
사실 그 두 소녀 중 한 아이가 여름에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기 진짜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예상은 했다.
두 아이는 흑인이었지만, 부모님은 전형적인 백인이었기에,
나머지 두 동생은 엄마를 그대로 닮은 블론드 헤어와 푸른 눈의 아이들이어서 그럴까. 추측은 했었다.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 저 유쾌한 부부에게 입양된 듯했다.
탁자 위에는 태어난 지 1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보다 조금 더 큰 예쁜 여자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안겨있었다.
나는 두 부부의 명랑, 쾌활함이 매우 아름답게 여겨졌다.
아니 경이로웠다.
아이 넷을 키우는 부모의 태도가 저럴 수가 있나.
여유롭고 느긋해 보이는 저 삶의 태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두 아이의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는 매일 리본이 바뀌는데 스스로 묶은 것일까.
그 아래 두 동생은 여느 미국 백인 아이들처럼 풀어헤친 금발인데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내 입에 들어가던 피자가 페퍼로니였는지 마르게리타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오늘도 아이들은 그 집에 놀러 갔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예쁜 '작은 아씨들'의 집에 -
불안증세를 완화하는 약을 4시간마다 복용하는 둘째는
아마도 아이들과 종종 트러블이 있는 듯했다.
얼굴이 예쁜 첫째는 너무 자신만만한 모습 때문에 몇몇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 두 아이와 내 아이들이 무난히 지내기를 바란다.
두 아이가 매일같이 아랫동네로 내려와 이집저집 문을 두드려
우리 모두가 공포에 떨지라도
나는 그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기억을 많이 쌓기를 바란다.
때로 모나고 서툴러 실수를 하더라도
결국에 친절함과 상냥함. 예의 바른 태도가 사람들의 진심을 얻는 길임을 터득하기를 바란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문 앞에 캔디 바스켓을 놓아둔다.
내가 혹시 아임쏘리. 오늘 내 아이들은 너와 놀 수 없다고 거절하면.
너는 언제나처럼 그럼 캔디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겠지.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바스켓을 뒤적여 캔디 두 개를 고를거야.
항상 두 개만 골라가는 너에게.
나는 세 개도 괜찮다고 말하는 동네 아줌마가 되고 싶다.
세 개도 괜찮아, 는 영어로 어떻게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