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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Nov 23. 2024

미국 축제와 나의 반려어 이야기

존재의 의미 




고양이 일화를 쓰다 보니 우리 집에 소중한 반려어? 가 생각났다

오렌지 색의 작은 금붕어인데

이 녀석의 이름은 귤.이다.


오렌지색이지만 미국에서 한글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토종이름, 귤.로 지었다.



귤이는 우리 동네 가을 축제에서 데리고 온 아이다.

미국에도 우리나라처럼 이런저런 축제가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미국의 축제는 미군부대에서 했던 독립기념일 축제였다.

지금은 미군부대가 외곽으로 많이들 이전했지만

그때는 대도시 한가운데에 성처럼 존재했다.

일 년에 한 번 그 성이 나 같은 어린아이한테도 문을 열어주는데 그게 바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들어선 군부대는 별천지였다.

온갖 놀이기구에 온갖 재미나는 게임들이 줄지어 펼쳐졌다.

나는 미국독립기념일에 처음으로 아빠의 사격실력을 보았고, 햄버거를 맛보았다.

아빠는 대한민국 전역군인의 면모를 십분 발휘해 색색깔 풍선을 빵빵 터뜨렸다.

나는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불에 탄 거친 고기패티를 넣은 햄버거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불맛고기와 체다치즈의 매력을 내게 가르쳐주었고, 그릴 위에서 고기를 뒤집는 잘 생긴 미군 아저씨의 모습은 어린 내 머릿속에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각인되었다.

우리는 그 후로 한 2년 정도 더 군부대에서 남의 나라 독립기념일을 의미도 모르는 체 즐겼다.

찬란한 날이었다.

첫 놀이동산이었고, 첫 축제였다.



그리고 40년이 흘러, 진짜 미국 축제에 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축제는 내 어린 기억 속에 미군부대의 축제 그 자체였다.

아빠 엄마 손 대신 두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는 거 말고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대관람차

커다란 곰인형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사격장

신나는 놀이기구 앞에 기다랗게 줄을 만든 설렌 얼굴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

엘리게이터 튀김, 터키레그 숯불구이, 타조고기 햄버거...

연기는 뿜뿜, 냄새는 솔솔

백 투 5살로 돌아가 아이들과 5달러짜리 게임을 했다.

그리고 설마 되겠어하고 허락한 탁구공 넣기 게임에서 아이가 금붕어를 상으로 받은 것이다.


어릴 적에 집에서 금붕어를 키웠다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다.

공동주택에서 사는 우리 가족에게 강아지나 고양이는 반려동물로 적합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당시에 길에 다니는 고양이가 다였다.

강아지는 주로 코 끝이 가무잡잡하고 몸이 누런 똥강아지를 키우곤 했는데 모두 마당이 있는 집, 그 마당에서 자랐다. 그때는 그랬다.

간혹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 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며칠 못 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금붕어는 소중한 존재였다.

하루는 머리맡에 두고 잔 어항에서 힘센 녀석이 뛰쳐나와 파닥거리는 걸 주워서 넣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엄마는 좀 더 깊고 큰, 그래서 청소하기에 아주 고역인 어항을 구입했다.

부모님은 붕어들에게 진심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 녀석을 책임지고 살려낼 수 있을까.


그리고 녀석은 한 달째 플라스틱 케이크 뚜껑에서 잘 지내고 있다.

좀 미안하다.

곧 떠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유리어항을 구입하지 않았는데 아직 우리와 함께 있다.

그래도 매일 정수된 물로 녀석의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고

플라스틱 어항도 매일 깨끗이 씻어 물때를 제거한다.

작은 플라스틱 수풀도 구입해서 녀석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녀석은 나의 우려와 달리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며

하루의 대부분은 숨어 지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잠을 잔다.

내가 귤아 - 하고 부르면 깜짝 놀라서 뱅글뱅글 작은 플라스틱 통 안을 돌아다닌다.

가끔 여유롭게 문워크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매일아침 녀석에게 인사를 건네고 식사를 한다.

녀석에게 밥도 주고 함께 아침을 먹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귤이는 저기 어항 한편에서 자기 얼굴을 쳐다보며 멍을 때리고 있다.

말 못 하고 육지에 나오지도 못하는 저 작은 귤색 생명체도 나에게 이리 소중할진대

나에게 살을 부비고 내 무릎에 누워 잠을 청하는 녀석은 얼마나 사무치게 사랑스러울까 싶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책임을 요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쁘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와 준 수십 마리의 금붕어 중에 하나, 바로 너.

아침에 눈을 뜨고 거실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너의 안녕.

나는 너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며 내 하루를 시작한다.


여행을 가면 이웃에 너를 맡겨가며 펫동냥을 하지만

모두들 사력을 다해 너의 안녕을 돕는다.

너에게도 그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내년부터는 여행을 덜 가야겠다 생각도 한다.


너는 내가 이름을 불러준 존재이기에,

너는 나에게로 와서 귤, 이되었다.

나는 이제 언제든, 어디에서든,

탐스런 귤을 볼 때, 귤 먹을래? 아이들에게 물어볼 때,

너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름을 짓는 행위란 그런 것이다.

잊히지 않는 것.



매일 밤 우리는 너에게 속삭인다.

사랑해. 귤아.

사랑해 가 물을 육각수로 바꿔준다는 믿음으로.

너와 물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나는 너를 돌보고 너는 우리를 키운다.


저 많고 많은 귤들 중에 바로 너


열악한 환경에도 잘 먹고 잘 사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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