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대척점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한다.
뭐 다들 비슷하겠지만.
작고 예쁜 것도 좋아하지만 크고 웅장하여 아름다운 것도 좋아한다.
역시 다들 같겠지만.
예쁘기만 하다면
좀 낯간지러워도 용서하고 좀 잔혹해도 인정한다.
잔혹한 아름다움과 낯간지러운 사랑스러움.
둘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닉한다.
그래서 나는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면 챙겨보고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도 빠짐없이 관람한다.
오늘(27일) 내가 애정하는 캐릭터 모아나의 두 번째 이야기가 개봉했다.
전 세계 동시개봉으로 알고 있다.
모아나는 바다의 선택을 받은 소녀가 부족의 운명을 구하는 이야기다.
모아나 part1에서 작은 아기가 해변에서 바다와 조우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모아나의 친구들. 얼빠진 헤이헤이와 유머감각까지 완벽한 마우이. 귀여운 아기돼지는
디즈니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러 조연들의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개봉첫날 아이들과 함께 본 한층 성장한 모아나의 모험이야기는 푸르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가슴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약간 놀랐던 것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함께 박수를 쳤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영화가 마치고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이들과 기분 좋게 박수를 따라 쳤다.
함께 관람하러 온 할머니들.
아빠와 함께와 영화 보는 내내 화장실을 오가던 어린 소녀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출구로 나오는 젊은 여성들.
연령도 성별도 다양한 관객들이 화장실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내 앞을 지나쳐갔다.
모두들 모아나와 사랑에 빠진 눈치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단체로 미니언즈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던 3대가 함께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미국인들의 각별한 애니메이션 사랑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미국의 어른들은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 살짝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이야기에 진심을 다한다.
세상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하고
친절과 배려는 암울한 미래를 바꾸고
노인과 어린이는 역사를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한다.
억지 스토리를 만들어서라도 이들은 ‘데얼이즈 언 아더 웨이! ’를 외친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내 머릿속에 국민교육헌장이 박혀있듯,
이들의 전두엽에는 미래를 개척하는 선량한 시민의 희생과 도전 정신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2시간 내내 유머와 액션을 절묘하게 버무린 진귀한 해산물 코스요리를 대하는 기분으로
바다 위와 아래의 모험을 눈으로 즐기고 난 후.
손뼉 치는 관객들 사이에서 문득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팬시한 바다를 보다 보니, 비 오던 날 변기에서 솟아오르던 하수구 역류가 떠올랐던 것일까.
(실제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마다 나오는 물의 극적 역할에 나는 늘 매료되곤 했다.)
아니면 우리도 아카데미 수상작을 가진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이 솟아오른 것일까.
인생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삶은 이끌고 돕는 것일까. 기생하고 혐오하는 것일까.
디즈니 안에도 악당이 있다. 그들도 비열하고 분노와 증오에 차있다.
하지만 늘 약간 어설프고 엉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모아나의 악, 은 분노한 신. 에 가깝다.
신의 저주 혹은 분노에 저항하는 작고 여린 소녀의 용기를 디즈니는 응원한다.
그리고 관객들도 함께 환호한다.
낯간지럽다.
그래도 보고 있자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의, 최근 문화적 세계관은 디스토피아다.
그 암울한 세계를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장식하고
속에 곰팡이가 가득한 케익을 화려한 아이싱으로 뒤덮어
정갈하게 차려진 테이블 위에 내어 놓는다.
케익을 반으로 잘라 그 안에 가득한 푸른곰팡이를 클로즈 업 할 때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나는 내 나라의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수상한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에 그 잔혹한 아름다움에 굴복한다.
그것은 낯간지럽지 않고
그저 처참하고 지나치게 적나라하여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압도된다.
그런 것도 아름다움이다.
내 아이에게는 결코 함께 즐기자고 할 수 없는 그 잔혹한 아름다움이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의 관심을 받게 하는 힘이다.
현실감 없는 프린세스 이야기와
현실을 넘어서는 현실의 묘사는
묘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세상은 도전과 희망으로 가득한 선량한 이들의 것이라는 판타지?
아니면
그나마 부여받은 이성의 힘을 약육강식을 위해 사용하는 비열한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달고 짠.
쓰고 단.
모순의 두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우리는 오늘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공주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모아나이지만
결국에 유전우성학적으로 바다의 선택을 받은 족장의 후예.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반은 신의 능력을 받은 마우이.
우리에게 디즈니는 말한다.
- 데얼 이즈 올웨이즈 언아더 웨이 -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인 밀림 속이라도 상관없어.
우리는 영원히 우리만의 성을 쌓을 거야.
판타지는 판타지 만의 역할이 있으니까.
그래.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시나리오를 쓴다.
반대 맛 아이스크림을 콘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매운맛, 짠맛, 쓴 맛.
그 위에 아름다운 스프링클을 뿌린다.
인생은 이런 거야.
달기도 쓰기도
하지만 멀리서 보면 찬란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
나는 기다린다.
예쁘고 잔혹한 이야기를 기가차게 잘 만드는 K컬처의 후속작을.
그 처절한 아름다움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한이 있더라도
대척점에서 디즈니를 마주할 새로운 쓴 맛 아이스크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