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여름에 다녀온 런던을 못 잊고 겨울에 다시 돌아갔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을 무사히 탈출(?)한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 런던 왕복 최저가 항공편을 검색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나는 런던이라는 도시에 푹 빠졌다.
히드로 공항 탈출기 링크를 참고로 올린다.
https://brunch.co.kr/@zamby1/9
신혼여행 때 다녀온 이탈리아도 못 잊어
28개월짜리 딸을 데리고 또 다녀온 나이기에
뭐든 질릴 때까지 해보는 나이므로
그래서 이 크레이지 한 환율의 시대가 올 줄은 모르던 여름에
나는 최저가 크리스마스 시즌 항공권을 덥석 붙잡았다.
런던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실컷 즐기고
이브에 돌아오는 아주 멋진 왕복항공권을.
런던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거의 모든 대중교통수단이 중단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당들도 모두 영업을 하지 않는다.
물론 박물관, 공연장, 관광지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러므로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아오는 환상적인(?) 왕복항공원을
무려 4개월 전에 최저가로 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런던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떠났다.
또다시 공포의 히드로 공항으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는 밤비행기다.
밤을 꼬박 새워 런던에 도착하면 아침 혹은 정오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8 시간 넘게 동쪽으로 날아가기에
우리의 시간은 날아간 시간의 두 배만큼 더 지나가 있다.
보통은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느라 좀비 같은 상태로 비행기에서 내리겠지만
이번 여행은 특별히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보잉비행기가
모든 비디오 시스템을 고장 내버려서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비행기 안에서 밤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그날.
내 인생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이 예약되어 있었다.
아이들까지 동반해 4인가족이 함께 뮤지컬을 즐기기엔 비용부담이 크기에
우리는 한국에서 번개맨 같은 어린이 뮤지컬만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었다.
그런 내가 런던에 온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본고장.
심지어 '23년 연말 브로드웨이에서 종료되어
더 이상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설의 뮤지컬.
남편과 데이트를 하던 시절
로열알버트 홀에서 있었던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을 영상으로 보고
우리는 난주 꼭 런던에 가서 원작을 보자.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내버려 두고
10살. 6살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로열 알버트 홀이 아닌 전용극장에 왔다.
전에 글에도 썼었지만
나에게 다정함이 뭔지 알려준 여행사 사장님이 구해주신,
저렴한데 좌석 위치도 좋은 표를 가지고.
사실 아이들이 중간에 잠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앉았다.
His Majesty 공연장은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고전적이었다.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메너 있고 질서를 잘 지켰다.
아이들이 공연을 방해할까 걱정이 되었다.
팬텀오브오페라 메인곡이 나올 때 둘째가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어쩌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생 뮤지컬을 오페라의 유령이라 명명하며
미국에 돌아오고도 며칠 동안
"The phantom of the opera is there.
In side your mind~~~"
후렴 부분을 외쳐댔다.
샹들리에가 추락할 때.
마스크를 쓴 훤칠한 팬텀이 등장해 크리스틴을 꼬셔서 지하세계로 데려가며
쿵쿵 짝짝 둘이서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부를 때
팬텀이 The music of the night를 허스키한 목소리로 열창할 때
어린 소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멈추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디즈니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저렇게 집중할 수 있구나.
멋진 음악과 아름다운 무대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관객들의 품격 있는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시차가 9시간이나 나는 도시로 날아온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2시간 반동안 집중시킬 수 있구나.
어메이징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이들은
크리스틴이 된 듯 아리아를 부르며
팬텀의 사랑이 옳은 것인가에 관해 논쟁을 한다.
집착이 무엇인지
사랑에 있어 외모란 어떤 것인지
- 모난 남자 만나지 마라. 고생한다. -
뭐. 이런 잔소리로 끝나는 우리의 토론.
친절한 챗지피티에 따르면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뮤지컬로,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이 작품은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개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수많은 나라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랑, 희생, 외로움, 자기 수용 등 다양한 감정의 복잡함을 다룹니다. 팬텀의 사랑은 집착적이고, 크리스틴의 갈등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깊고 복잡합니다. 이 뮤지컬은 사람들의 외면받은 사랑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또한, 팬텀과 크리스틴, 그리고 라울 사이의 사랑의 충돌이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10월 9일 런던 웨스트엔드의 헤르 마저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첫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브로드웨이에서도 1988년에 개막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뮤지컬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장기 공연 중 하나로, 30년 이상 동안 전 세계에서 상연되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그랜드 한 세트 디자인, 화려한 의상, 감동적인 음악으로 유명하며, 팬텀의 마스크, 지하 궁전 등의 상징적인 요소들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깨알 같은 나무위키에 따르면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기간 공연했던 뮤지컬이며, 2020년 기준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 등의 여파로 수익성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4월 16일을 끝으로 브로드웨이 상연이 끝났다. 이로써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기간 공연 중인 뮤지컬이라는 기네스 세계 기록은 35년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코비드 시기에 중단되었다가 2021년부터 다시 공연이 지속되고 있다.
나는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인어공주 같은 새드엔딩을 좋아했고
자라서도 폭풍의 언덕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변태적인(?) 사랑이야기에 매료되곤 했다.
그리고 팬텀 같은 주인공에게 마음이 많이 가는 거 같기도 하다.
어딘가 아픈 사람.
온전치 못하고 좀 고장 난 캐릭터에 마음이 빼앗긴다.
딸에게는 늘 포비(애니메이션 뽀로로에 나오는 북극곰 캐릭터. 순하고 느리며 포용적임)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늘 모나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딸의 표현에 따르면 강렬하고 자극적인 남자.
즉 본인의 아빠를 지칭한다.
사실 내 남편은 성마른 사람이라 그렇지 고장은 나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에게 말한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단점이 있더라도 살만하다고.
그래도 나는 딸이 푸근하고 순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를 늘 바란다.
상처받은 사람의 흉터는 네가 치유해 줄 수 없다고
모난 사람의 모서리는 너를 아프게 찌를 것이며
사랑은 결코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고
다만 사랑으로 참고 견딜 뿐이라고.
아직은 말하지 못한다.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질문할까봐.
언젠가 내 딸이 자라, 크리스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을 때
혹여라도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폭발적인 매력으로 내 딸아이를 미혹하면
나는 저 말을 미리 못 한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크리스틴은 가면 속에 망가진 팬텀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돌린 건지 모르지만
가면 속에 어두운 '내면'을 보고 마음을 돌리는 여자들은 생각보다 적기에.
나는 내 아이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여자로 자라기를 바란다.
쓴 놈을 만나면 퉤. 뱉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쿨한 크리스틴이 되기를.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도
딸의 미래 남편감만 생각하는 나는 확실히 K-아줌마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들려오는
팬텀의 애타는 Music of the night 이 내 마음을 흔든다.
나는 역시 고장 난 남자를 좋아하나보다.
챗지피티에게 2024년 12월 런던의 팬텀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가면 속에 그를 들여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나는 적금을 들어야 할 듯하다.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 팬텀의 목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릴 거 같다.
고장난듯 아닌듯한 내 남편의 손을 잡고
고장이 확실히 난 팬텀의 노래를 듣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