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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Apr 14. 2023

아직도 달리고 있습니다만..

의식하는 것,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평화




지난 글에서 요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달리기에 대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zamunubida/12

요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자체가 달리기에서 비롯된 문제(족저근막염)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달리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직도 달리기를 한다. 


부상의 위험이 있음에도, 달리기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운동이다. 기본적인 복장만 갖추면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레슨에 따른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가장 단 시간 내에 기분을 밝게 전환해 주는 운동이라는 것 아닐까. 조금만 달려도 머릿속에 '달려라~달려라~달려라, 하니!!' 하는 어린 시절 만화의 주제가가 울려 퍼지며, 내가 마치 만화 속 '하니'로 빙의한 듯 전속력으로 달리는 내 모습은 우습지만, 그만큼이나 유쾌하다. 가끔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불현듯 찾아올 때, 나는 운동화끈부터 동여매고 일단 집 밖으로 나간다. 특히, 한창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았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 달리기는 나에게 있어 동아줄과도 같은 운동이었다. 유학을 온 것이 무색하게, 집 안에 콕 박혀 수업을 전부 온라인으로 들어야 했지만, 그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 앞 숲을 한 바퀴 달리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고마운 운동을 부상하나로 그만두자니, 아쉬움이 너무 컸다. 운동자체가 문제라기엔, 달리기를 몇십 년 이상 하고도 건강한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기도 했고, 내게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넘어갈 필요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된 동작을 취했으리란 전제하에, 다시 차근차근 처음부터 무엇이 문제였는지 세심하게 점검해나가 보기로 했다. 발바닥을 딛는 부분을 바꿔보기도 하고, 허리의 각도나 속도를 조정해보기도 했다. 그 모든 분석 끝에 내린 원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인은,  '음악'이었다.


'음악'  고마운 도구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나 기분을 내고 싶을 , 음악  곡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주는가. 하지만 집중해서 무언가를 해야  , 특히 신체활동 , '음악'  도움이 되는 매개체는 아니다.

나에게 있어 운동시간만큼은 내 몸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 혹은 내 몸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어야 한다. 운동음악의 대부분이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내 몸의 템포를 무시한 채 음악의 템포를 따라가다 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고, 통각이 둔해져 불편한 부분을 알아채기 어려워진다.


이제 난 운동할 때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운동 중엔 듣지 않고, 시작 전에 부스트 업하기 위해 들을 뿐, 그 이외의 음악 청취는 내 집중을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동안 내 몸의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심장 소리가 과도하진 않은지, 어딘가 불편한 신체부위가 있는지 등의 내 몸이 하는 소리를 듣고, 강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음악까지 듣는 것은 내 뇌를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흔히 운동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서 소심하게나마 반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운동에 들어가는 스테이지까지는 분명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개념을 깔고 갈 수는 있지만, 운동을 하는 그 행위까지도 반드시 전투모드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운동 자체는 그간 몸에 보이지 못했던 관심을 집중적으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그 대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기원한다는 것과 같은 말 아닐까.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잘되길 원하며, 그 길을 원활히 걷을 나 자신이 건강하고 밝게 빛나길 바란다. 물론, 사랑의 방식, 혹은 사랑의 색깔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되묻고 직면하는 전쟁 같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운동방식으로 풀어낸다면, 나 자신과 싸우듯이 운동을 하는 것도 일종의 다른 사랑방식이라 주장한다면 그 말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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