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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May 06. 2024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 과정 1

훗날 자녀가 자신의 앞날을 상의해 오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초년생 시절 번아웃이 왔던 때의 일이다.

그 때 당시 만났던 엑스 남자친구는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이었는데 힘들고도 행복한 호주라이프를 미니홈피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너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었고 내가 이직을 하는 대신 해외에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를 바랐다. 좋으신 호주 부부 가정 집에서 홈스테이 할 수 있도록 소개해 주는 등 적극적인 정보와 멘토링 덕분에 해외 체류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투자해 필리핀 3개월 + 호주 3개월 정도로 영어공부 겸 여행 계획을 세웠고 돌아오는 날짜는 확정짓지 않은 왕복 오픈티켓을 끊었다. 그 친구는 귀국을 했고 나는 바톤터치를 하고 한국을 떠났다.


낯설고 새로운 땅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기를 기대했다.

나와 타인의 욕망이 뒤섞인 무의식 영역을 디톡스 하고 나면 어떤 세상을 맞이하더라도 순수한 나의 욕망으로 받아들일 수 잇을 것만 같았다. 여행 중 노트와 펜을 꺼내 펼쳐보지 못했던 수만가지 떠오른 일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끄적여 보며 알수 없는 힘듬의 정체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눈에 띄는 항목들이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 그림쟁이로서의 길은 내 의지로 잠시 접어둔 것. 또 하나는 중학교를 입학해서도 계속 다니고 싶었던 피아노학원을 억지로 그만두고 엄마 손에 이끌려 종합학원에 갔던 일이었다. 내 학년 공부도 소화가 안 된 느낌이었는데 다음 학년 수학을 선행학습하는 학원이었다. 상담 실장님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와 이야기 나누었고 내 인생에 관해 나누는 그들의 대화에 나는 끼지 못했다. 나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음악성도 좋았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 작곡 실기시험이 있었는데 실제 작곡 전공을 목표하는 친구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만점을 받았다. 중학교 때는 엄마의 클래식 기타를 빌려 기타동아리 활동도 했고 음악시간에는 피아노 반주자를 했다.  엄마는 자신의 어린시절 한국에서 소수 인원만 뽑히는 합창단원에 뽑히고도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 하는 항공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단원에서 빠져야 했던 경험을 큰 좌절, 트라우마로 인식되고 있었다. 집안의 기둥뿌리 정도는 뽑고 비행기를 타고 유학까지 보내는 정도의 지원이 아니라면 작은 선생님을 통해 걸어갈 수 있는 자녀의 소소한 음악인의 길은 상상하지 못하셨다. 나는 노트에 '피아노는 취미로 재미나게 즐기자' 라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내 스스로 마침표로 찍었다. 호주에서 알고 지낸 호주인 친구는 나라의 대학등록금 지원과 여유롭다 못해 느린 생활 환경으로 생물학도 전공하면서 음악도 공부하고 있었고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기타로 들려주면서 극단적인 긴장감 없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귀국하는 길에 한달 간 홀로 유럽여행을 했다.

그 여행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기대했다.

뻔한 관광명소 보다는 골목골목 현지인들의 삶을 구경했고 유명한 음식점 보다 일부러 로컬 음식점에 방문했다.

버스킹을 앉아서 구경했고 앉아서 스케치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과제로 전시회를 방문했던 마음가짐과 달리 현대미술 앞에서 작품을 오랜시간 바라보았다. 여행지에서 배우 강동원을 닮은 한국사람을 마주해 너도 한국사람이니 반갑게 인사나누기도 했고 완벽한 여행 계획을 세운 빼곡한 노트를 지닌 한국 인기 학원강사를 마주해 즉흥적인 나의 여행스타일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고 내가 얻은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나는 매우 실망스워서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나는 지극히 평소와 똑같은 현실로 돌아왔고 확정된 디자인회사 입사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내 일에 대한 확신은 얻지 못했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 리스트에 줄을 그어 지웠다는 사실은 얻었다.'


그러면서 약간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입사 전 여행 사진을 정리했다.

그런데 넘쳐나는 사진들을 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들의 결이 모두 비슷했다는 점이다.

나를 찍은 사진이나 관광지 명소 풍경은 별로 없었고 해외에서 발견한 신기한 건축물의 장식, 패턴, 신기한 그림이 있는 카페트, 아이디어 디자인 상품, 감각적인 칼라 배색, 특색있는 분위기를 내뿜는 설치미술 등 미술 디자인에 관련한 사진자료가 넘쳐났다. 그 때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자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다. 나는 그리고 꾸미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데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니. 마냥 즐기지 못했던 여행이 아쉬웠지만 내 인생에 대해 학원 상담실장도 아닌 부모도 아닌 내가 나에 대해 지금이라도 진심어린 고민하는 시간을 보낸데에 대해 무척 뿌듯했다. 이 이야기를 언젠가 글을 통해 알려야지 라며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을 통해 표현하는 오늘이 또한 신기하다. 돌이켜 보면 결국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던 탐색과 방황하는 길은 명쾌하지 못했고 찝찝하기까지 했다. 삶이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세상은 처음부터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인 작가와 함께 운동을 하며 여행 경험을 공유하던 중 <변화를 위한 그림 일기>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미술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에 공감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는 여정에서 겪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미술전공을 하던 저자는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외국에 음악학교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전공 공부의 연장으로 버스킹을 도전하고 내질렀던 자신의 목소리에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비로소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게 더 웃긴 건 버스킹을 지켜보던 관중들도 저자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표정으로 확인하게 되어 서로 민망했다는 현장 경험에 대한 일화다. 게다가 학기 도중 낙서 그림을 본 교수가 '자네, 그러지 말고 미술을 해볼 생각은 없나.'라는 말을 건넸다는 글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저자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노력을 통해 깨닫는 탐색 과정이 참 재밌었다.


훗날 자녀가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상의해 오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있잖아. 나도 그런 고민이 있어서 여행을 가서 이러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았던 부분이 있었어.'

'이러 이러한 책을 보았어. 그 사람도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었는데 이런 결론을 내렸더라.

너도 너만의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찾아나갈 수 있을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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