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을 가르며 달려온 딸은 여느 때와 같이 내 배에 파묻히며 착지했다
* 목차에 추가 꼭지 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나를 돌아보는 과정은 흥미로운 시간여행이었다.
아이에게 좋은 정서를 대물림하기 위한 과정은 나를 다각도로 객관화하는 자산이 되어갔다.
구체적 삶을 통한 심리상담외 여러 노력 그리고 작은 승화의 반복은 평안함의 분포를 넓혀갔다. 정신과의사이자 사이코드라마 전문가 윤우상의 저서 <엄마심리수업>에서는 닿고자 했던 생각을 정의 내려 주었다. 그는 엄마의 무의식 비밀코드 2가지를 밝혔다. 그것은 바로 '엄마 냄새'와 '엄마 색안경'이었다.
먼저 내가 받았던 구체적인 심리상담 내용 하나를 예를 들어 본다.
집 근처 공원으로 외출하기 직전이었다. 배고프다는 7세 첫째 아이에게 김에다가 밥과 김치를 넣어서 말아주었다. 아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김치를 일일이 다 빼달라고 했다. 지난번엔 김치를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던 말과 달랐다. 이미 완료되었으니 그냥 먹으라고 했지만 눈물을 보이며 떼를 썼다. 그 후에는 옷에 단추가 안 잠긴다며 떼가 이어졌고 이쯤에서 나도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난주 인내심 만렙을 앞두고 버럭 화를 내어 물거품이 되어버린 일을 떠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그래. 모든 모습에는 이유가 있다.' 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단 김치를 일일이 다 빼주고 단추도 잠가주었다. 훈련을 통해 감정 조절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갑갑함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심리상담 날 이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다. 상담을 마치니 역시나 못마땅했던 그 행동이 기특함으로 변환되는 체험을 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김밥 이전 아이가 선택한 양말보다 내 생각으로 운동화에 적합한 더 얇은 양말을 신으라고 반강제로 밀어붙인 일이 떠올랐다. 아이는 김치를 통해 억울하게 눌린 자발성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윤우상은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가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보면 아이는 어딜 가나 귀여운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아이를 귀여워하게 된다고 했다. 반대로 엄마가 아이를 못났다고 보면 아이 몸에 못난 냄새가 배어 자기도 모르게 못난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아이를 왠지 못난 아이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어느 학교 선생님은 이상하게 미움을 끌어당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녀의 엄마가 바라보는 냄새를 품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의 엄마는 자녀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전화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꼬치꼬치 따지고 간섭한다고 했다. 상담을 갈 때도 어떻게 갈 건지 설명하라는 등 어린아이 취급을 했고 엄마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가는 것보다 이렇게 가는 게 더 빠르다고 그랬다고 했다. 늘 성에 차지 않아 했고 당신 손으로 다시 직접 하는 등의 면모를 보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잔소리'라는 의미가 상당히 미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잔소리는 일상을 옥죄이고 간절한 애정을 미끼삼은 '생활언어폭력'이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도 우리는 평화로운 '생활언어지도'를 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잔소리가 불안이라면 그 감정이 압도적일수록 아이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이를테면, 나의 둘째 아이가 식탁에서 내려와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몸만 먼저 내려온 후 주스를 옮겼으면 하는데 처음부터 주스를 철렁철렁 손에 들고 동시에 자리를 옮기는 모습에 관여하고 싶은 나의 무의식적 자동 간섭을 끊어내야 했다. (식당같은 외부 장소에서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아이에게 불안을 전달하는 대신 차라리 엄마가 불안하라고 했다. 아이는 실수로 주스를 흘려도 된다는 '집안 분위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음 단계가 생기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우뇌 영역을 발달시킬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부터는 사고를 깊은 곳으로 내려보낼 수 있는 감성과 창의성을 주관하는 우뇌 역량 싸움이라고 했다.) 아이는 실수하는 모습마저 수용받았다고 생각되고 무심한 듯 수건을 건네 주면 4세 아이도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한다. 완벽하게 안 닦아도 된다. 끈적임은 몰래 닦으면 된다. 이게 참 어렵다. 우리는 항상 심각하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세상을 향해 다시 도전해도 된다는 생각은 작은 경험의 누적을 통해 배우게 된다. 닿지 않는 구름 저 너머 원대하고 멋진 이상이 아닌 현실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작은 일부터 손을 뻗게 해줄 용기를 준다. 잔소리가 많은 불안한 엄마 역시 완벽하지 않을 바에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실패율 0퍼센트인 자신의 모습에 안심한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남의 작은 시도와 성공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은근히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100퍼센트 자아 투사를 답습한다.
저자는 이 시대의 분위기가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교육 플랜을 짜고 감정코칭, 상상력, 사회성, 자기 주도 학습을 만들어주는 엄마의 덕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런 엄마는 '유능한 엄마'가 되고 '멋진 나'가 되는 것. 자녀 교육 욕망과 엄마의 자기실현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물, 코칭 맘이 아이의 자발성을 죽인다고 했다.
'나는 너를 믿어. 잘할 수 있다'는 '입말'에는 함정이 있는데 사실 안 괜찮고 잘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 말은 아이의 현재 모습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무심히 두면 그만이지 좋다 나쁘다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부모 자신은 언제나 정의와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기에 자기의 생각, 자기의 행동이 옳다고 믿는다. 아이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해 준 엄마는 결과적으로 가장 큰 것을 얻는데 그것은 아이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 자존감은 평행을 살아가는 밑천이 된다. 그럼에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기에 병든 엄마는 적극적인 치료를 하길 바라고 대게의 부모는 미웠다 좋았다 악썼다 후회했다 한다면서 노력과 훈련을 지속해 나가기를 격려하였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여행 왕복티켓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는 매우 두렵고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길이 참 익숙한 동네 같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발전하는 그래프는 언제나 그렇듯 하향을 포함한 우상향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자 한다면 아이의 모습 안에서 답을 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내가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얻은 결론이다.
오늘은 숲과 작은 동식물을 품고 있는 동네 공원에 왔다. 저 멀리 뛰어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첫째 아이의 실루엣에서 어린 '나'가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를 후회했고 좋아했고 미워했구나. 내 딸에게 그러한 엄마 냄새를 풍겼구나. 꽃들을 가르며 달려온 강아지 같은 딸은 여느 때와 같이 내 배에 파묻히며 착지했다. 색안경 밖으론 그저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