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동작과 호흡법을 먼저 익혔지만, 무엇보다 이 말의 의미가 좋았다. '나마스떼 = 당신에게 깃든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요가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는데......
예민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어릴 때부터 자주 꾸었던 악몽의 횟수가 줄었다.
그것은 요가를 통해서이기도 했고, 그 당시 내 환경이 달라지면서 받은 영향이기도 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쌓아왔던 많은 것을 잃고, 가족까지 멀리 떠나버린 후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아직 젊음으로.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아까워서....
그래서 안간힘을 써서 용기를 내었다.
-다시 시작해 볼 용기-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내 인생'이라고 인식을 바꿨을 때부터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좋음'에 감사하면서 그 '기쁨'으로 인해 또 다른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감'이란 '겸손함'과 같은 의미이고, '기쁨'이란 긍정적인 표현이며 그로 인해 좋은 일들이 '반복' 된다는 것.'
센터장의 권유로 요가 수업을 맡게 된 후, 난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수업을 시작하였다.
며칠 전, 오여사가 미팅실로 불러,
"다른 타임은 이미 편성이 끝났으니까 추가로 마련한 거야. 난 공과 사는 분명한 사람이야. 그 말은 곧 예랑씨가, 아니지 이제는 서 선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지. 앞으로 잘해보자고."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감사는..... 그것 말고 있잖아. 그거."
"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그 옆에서 수강표 복사를 하고 있던 하나가 헛기침을 하며
"아우, 시창씨가 이번엔 헐리웃으로 진출한다던데, 대단하지 않아요?"
그 말을 잽싸게 받아챈 오여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어머어머 그래? 내가 전부터 크게 될 사람인 줄 알았어. 얼마나 잘 생겼는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보다 멋지다니깐?"
"사장님. 요새 디카프리오는 비주얼은 망한 것 같아요."
"전성기 때 말이야. '토탈 이클립스' 봤어? 난 시창씨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그 강렬한 눈빛 하며 매너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장님 그거 아세요? 예랑이 애인은 더 잘생겼어요."
그 말에 '휙' 돌아보는 오여사의 얼굴에 부러움이 한가득이다.
"서 선생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길래 그렇게 복이 많아? 가끔 궁금해. 남자랑 여자랑 보는 게 다른 가? 내가 팔 년만 젊었어도...... 아무튼 서 선생한테 기대하는 바가 아주 커. 알았지?"
할 말을 마치고, 미팅실 밖으로 나가는 오여사.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하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움찔하는 하나.
"넌 왜,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세상 물정을 모르냐. 오여사도 기대치가 있어야 널 써줄 거 아냐."
"만약 안 오면? 시창씨가 안 오면 어떡해?"
"왜 안와? 지가 지 입으로 온다고 했으면 와야지."
"넌 이번일 알면서 그래? 그리고, 지금 내 입장이 얼마나 곤란한 줄 알아?"
"서예랑."
"왜?"
"시작은 일단 이렇게 했어도, 그 후부터는 네가 하기 나름이야. 장시창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만약에 실력이 없으면 누가 미쳤다고 네 수업을 들으려 하겠어? 이제부터는 너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알았어? 잘 생각해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럼 이 언니는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하나가 '파이팅'하며 미팅실 밖으로 나가고, 난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이제부터는 내 문제이고, 내가 하기 나름이다. 기회는 주어지지만, 실력은 스스로 쌓아야 한다. 하나는 언제 저렇게 어른이 되었을까.
며칠을 밤늦게 동작을 짰다. 어떤 자세가 더 따라 하기 쉽고,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응용할 수 있을까.
구성된 동작을 노트에 하나씩 그리고 적어보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무경이 생각났는데.......
연락이 끊긴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센터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점심식사 후 잠깐의 여유가 있을 때, 오후의 화창한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 곳곳에서, 그리고 잠이 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전에 그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점점 낯설게 다가오고 있다.
하나는 애인과의 데이트로 바쁘고, 시창은 그날 이후, 사라져버렸다.
'무경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픈 건 아니겠지? 아니면 벌써 날, 잊은 걸까?'
오후에 미팅실을 정리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난,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어보며 멍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천천히 돌아보니 무경과 함께 있었던 '그녀'였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데, 그녀가 방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서예랑씨 맞죠?"
여전히 낭랑하고 당당한 그녀의 목소리.
난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악수를 건네며 활짝 웃는다.
"이승주입니다. 우리 초면 아니죠?"
그녀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맞구나. 무경의 전 애인이고, 시창의 첫사랑이라는 '승주'라는 사람이 그녀였어.
'그런데, 여긴 왜?'
난 그 손을 잡지 않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