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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Oct 15. 2023

잔물결 이후엔 파도가 크게 친다

반복, 몰입, 침잠, 각성 이후의 전환

회사원의 업무시간을 뭉툭하게 ‘9TO6’라고 가정했을 때, 모두의 업무 루틴이 궁금할 때가 있다. 다들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면 1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몸에 익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9시에 딱 맞추어 오는 게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30분 정도 여유를 두는 걸 좋아한다거나, 8시 58분쯤 도착하는 스릴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다른 패턴이 몸에 익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출발하는 장소와 이용하는 차량과 동선이 모두 다를 테니까. 간혹 온라인상에서 적절한 출퇴근 시간을 두고 갑을논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 적절함에 대한 견해는 내 생각보다 더 촘촘하고 다양할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몇 달을 같은 회사에 반복하여 출퇴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깨닫게 된다. 집에서 몇 시 몇 분까지는 출발해야 회사에 몇 시 몇 분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것. 그 깨달음과 함께 개인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타임리밋이 정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한 사람의 출퇴근 시간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한 사람의 생활 습관을 형성하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패턴이 있다. 이사를 가면 집 밖을 나서는 시간이 분 단위로 쪼개어 달라지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지키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출근 시간도 거의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어떤 패턴이 정해지면 그 패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마치 ‘오늘의 운세’처럼 그 리듬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오늘 일진이 안 좋겠는걸’ 같은 성급한 예측을 하기도 한다. 일진이야 당연히 출근 루틴의 불협화음과 관계없이 생기려면 생기고 말려면 말 것인데. 게다가 우리의 삶은 개인의 패턴과 관계없이, 무수히 많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얽혀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출퇴근 패턴에 이상이 생겼다고 ‘오늘 일진이 안 좋은데’ 같은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생각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런 탓을 해버리면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말도 입버릇처럼 해버리곤 한다.


그렇다. 나는 패턴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거기서 벗어나면 딱히 화가 나지는 않고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긴 하지만 이를 테면 이런 시간들이 정해져 있으면 편하다(참고로 나는 파워 P다). 마치 일일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씻고 준비하는 시간, 집밖으로 나서는 시간, 교통수단에 몸을 싣는 시간,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리고 지난밤 사이 회사에서 일어난 다반사-화분이 죽어가고 있군, 날이 쌀쌀해졌군, 책상 표면이 차가워졌군 등등-를 구경하는 등의 시간을 보낸 후 오늘의 할 일 체크리스트를 정리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업무를 시작할 때는 메일함을 먼저 확인하는데…… 그런데 쓰다 보니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패턴이 남에게는 너나 재밌지 나야 알든 말든이다 싶을 것 같으므로 이런 이야기들은 이쯤에서 줄이기로 한다.


하루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후, 작성한 대로 빠릿빠릿 일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늘 나의 능력을 과신한 난공불락의 계획 성을 쌓는 편이고 인간의 집중력 또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도 자주 찾아온다. 우리들의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집중력 없이도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바짝 집중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집중력이 없어도 해낼 수 있는 일이야 흐린 눈을 하고 척척 착착 헤쳐나갈 수 있지만 바짝 집중해야 하는 일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커피나 부스팅 음료를 마시는 법도 있겠고 잠시 여유를 두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붙잡고 보는 방법도 있겠다.


내 업무에서 특히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일은 교정지를 보는 시간이다. 디자인팀에서 넘어온 갓 뽑아낸 따끈따끈한 교정지를 받아 들었을 때면 이상한 각오가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아. 나 이제부터 완전히 몰입해야 해, 하는 생각. 그러나 ‘몰입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여러 생각들이 우수수 몰려들어오고 어쩐지 몰입이 잘 안 될 것만 같다.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또 몰입으로 들어가기 위한 나만의 행동 패턴을 하나 연다. 그건 새로 온 교정지를 판형에 맞추어 잘라보는 것이다. 메모하기 좋게 여백이 넓게 있는 것이 좋을 때도 있어서 매번 그러진 않지만 진행되는 중간 즈음에는 왠지 한번 잘라보는 게 습관이 됐다. 횟집 요리사가 칼을 가는 느낌이 그러려나. 아무튼 한번 습관이 되고 나니 왠지 벗어날 수 없게 되어서 종종 그런 일을 벌인다. 


모두가 일하는 중에 벌떡 일어나 쓱싹쓱싹 칼질을 한다면 굉장히 민폐일 것이다. 나 또한 카메라 공포증이 있어서 사무실 안에서 그런 대담한 행동을 벌일 생각은 없다. 다행히 이전 회사에는 그런 일을 할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교정지를 자를 때면 회의실로 가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출력되어 나온 교정지의 네 모서리 끝에는 앞으로 종이가 잘려나갈 재단선이 인쇄되어 나오는데, 그 선에 맞춰 자르면 우리가 읽는 책의 판형이 완성된다. 물론 실제로 나오는 책은 안쪽에 제본을 하므로 좀 더 말려들어가니까 이것이 완성본이다! 하기는 어렵겠지만 책이 나오기 이전과 이후의 중간 단계 어딘가로 진입하는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 어디까지나 느낌의 영역이라서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여하튼 나의 경우엔 그렇다. (나는 예전부터 꽤 여러 번 책의 완성 이전에 최대한 실제 책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여러 행동을 해 보았는데 무슨 짓을 해도 실제 책처럼 되는 경우는 없었다.) 


종이를 몇 장씩 겹쳐가며 자르다 보면 시신경도 저절로 작동해서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포착되고야 만다. 그러면 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되었구나 하고 보지만, 그것에 대해 애써 생각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으려 든다. 중간중간 스쳐가는 생각들은 칼질과 함께 슥슥 잘려나가고 그 과정에서 종이에 손이 베거나 삑사리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하나둘 비워진다. 반복되는 작업이 불러일으키는 몰입의 상태다.


전에 대학생 때 한 기관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안내문이 적힌 종이를 세 번 접어서 봉투에 집어넣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업무가 분장되었고 내가 종이를 접어서 넣으면 다른 사람이 그걸 붙이고 다른 사람은 주소 라벨링 작업을 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서로 개인적인 교류 없이 라디오 방송만 틀어놓은 채 정신없이 그 작업을 반복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라디오의 멘트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 반복이 몰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정지를 자르는 작업 역시 그렇다. 내가 궁극적으로 다다르려 하는 지점은 재단을 통한 몰입이 아니라 이 이후부터 있을 업무의 몰입이고, 그 몰입을 통한 생산적인 활동이니까. 이 행위는 비움에 가깝고 비움으로 인한 심리적 침잠 과정이 맞을 것이다. 머릿속에 떠도는 여러 걱정과 생각을 반복 작업을 통해 비워내고 나면 침착하게 가라앉은 내가 있다. 마음의 여백을 다 썰어내고 나면 어쩐지 차분해져서,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을 것처럼 잘 벼린 깨끗한 유리창이 되어 있다. 그제야 전환의 스위치를 켜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하나씩 이런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나는 이 단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아주 좋아한다. 앞으로 할 일을 눈앞에 두고 걱정이 쏟아지며 어수선해진 내가, 이 반복을 통해 마침내 차분해져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는 전환의 과정을. 집중 잘하는 어떤 사람은 이런 것 없이도 스위치를 누르면 몰입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런 의식과도 같은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 크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편안해졌다. 


나에게는 큰 파도를 일으키기 위한 잔물결의 시간이 필요하다. 몇 번이고 찰싹찰싹 입질만 오다 물러나기에 일견 잔잔하다고 비칠 수 있는 그 과정 속에서, 저 아래서는 조금씩 박차 오르기 위한 발동이 걸리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할 일을 마주할 충분한 몰입의 시간이다. 나는 이 파도 위에 올라타 비로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함께 일하는 회사 업무의 특성상, 중간중간 메신저의 반짝거림과 전화와 각종 호출로 인해 몰입에서 깨어날 수 있음은 각오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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