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댓츠올 Jan 29. 2024

마침표가 없는 ‘말’

방송 자막엔 왜 마침표가 없을까

우리집엔 티브이가 없다. 혼자 있을 때 소음이 있는 상태-티브이를 틀어두거나 음악을 틀어두는 등-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온전한 내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티브이를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뉴스는 기사와 뉴스레터 등으로 접하고 여타 프로그램은 가끔 들르는 본가에서 한 번씩 보는 것으로 족했다. OTT가 활성화되면서부터는 보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찾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티브이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본가에 들러 뉴스를 보다가 놀랐다. 자막 처리되어 나오는 인터뷰이의 말에 마침표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식하고 나니 낯설어서 계속 살피게 되었는데, 화면 하단에 흐르는 문구인 ‘다음에 나올 내용 안내’에도 마침표는 없었다. 대신, 분리하여 인식해야 하는 정보는 색깔 등으로 구분하는 듯했다.

그걸 인식하고 난 뒤부터 티브이를 볼 때마다 자막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없나? 싶어서. 그동안 왜 모르고 있었지 싶을 정도로 방송 자막에는 일괄적으로 마침표가 들어가지 않았고, 말줄임표의 경우도 가운뎃점이 아니라 하단에 세 개가 찍혀 있었다. 그 외에도 화면 상단 좌우에 들어가는 정보나 하단의 좌우에 들어가는 정보 등을 살펴보는 재미도 꽤 있었다. 책을 만들 때 종이 판면에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넣는 것처럼 티브이 화면 역시 영상이라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여러 요소들이 알차게 배치되어 있었다. 책의 편집에도 강제는 아니더라도 느슨한 약속이 있는 것처럼, 영상 편집에도 어떤 규칙들이 다양하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중 내 관심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것은 마침표의 유무였다.


방송자막에는 왜 마침표가 없을까?

종이책에 익숙해서 그런지 ‘-다’ 이후에 마침표가 없으면 그것은 문장으로서 제대로 종결되지 않은 기분이다. 기분이라고 썼으니 결국 기분이라는 주관적인 영역에서밖에 말할 수 없겠으나, 왠지 하다 만 말 같달까. ‘~하다 (보니) ~했다’처럼 ‘-다.’ 이후에도 새롭게 이어지는 말이 있기도 하니 말이다. 시처럼 시인의 의도(?) 따라 마침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는 있는 행도 있고 없는 행도 있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마침표가 없는 것을 보니 이 세계가 가진 공통의 법칙으로 보였다. 

자막 제작자들이 한데 모여 “자막을 제작할 때는 마침표를 빼세요” 같은 가이드를 학습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러한 규정이 따로 정리된 가이드가 있을지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조금 찾아봤는데, 규범 표기 같은 것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각 방송사에서 배포한 심의규정에 대한 가이드라인 혹은 맞춤법, 외래어나 비속어 오남용에 대한 사례를 분석한 자료들은 있었지만 방송자막에서는 이런 언어 사용을 지양하는구나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뿐 법칙으로 정리된 것을 아직 찾을 순 없었다(있다면 누가 알려주세요). 결국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런저런 의견을 종합해 보았는데 공통적인 맥락은 있었다.


방송자막은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자막은 입말을 옮겨 적은 것이고 한 줄에 들어가야 할 글자의 양이 적으므로 마침표까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들이었다. 글자의 크기를 작게 해서 많이 넣는 것보다는 잘 보이도록 크게 쓰되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것이 방송자막의 역할이다. (실제의 입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청각 장애인용 자막과는 다른 뉴스 및 예능용 자막에 대한 이야기임을 밝힌다. OTT에서 제공하는 해당 자막의 경우에도 마침표는 없는 듯했다.) 방송자막은 길어야 3-4줄 내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빠르게 지나가는 편이라 귀로 들으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눈으로 보지 정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문장 부호까지 꼼꼼하게 쓰는 것이 오히려 시각적으로 가독을 해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외에도 여는 따옴표와 닫는 따옴표의 구분이 없는 등 살펴보고 있자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점을 꽤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따옴표의 구분 없음은 웹상의 글쓰기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로 브런치에서 작성하는 기본 포맷에서도 따옴표는 '  ', "  " 이렇게 여닫음이 구분 없이 표기된다. 도서 역시 분야에 따라 종종 앞서 언급한 형태의 구분 없는 따옴표를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  ’, “  ” 이러한 형태를 좀더 선호하는 편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강조하는 것인지 시각적으로 확실히 구분되어서 그렇다. 지금 쓰는 글 역시 다른 편집프로그램에서 복사하여 붙여 넣기 하며 입력하고 있다.


어색하다 혹은 눈에 띈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내가 종이책에 인쇄된 활자 매체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종이 위에 한글로 인쇄된 활자 매체에 익숙한 탓이겠지. 우리가 한국어 사용자이기 때문에, 따옴표와 낫표, 말줄임표 등이 한글에 사용되는 문장 부호와 편집틀이 너무나도 눈에 익어버린 탓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 매체에 익숙한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일 테고. 


그렇게 왜? 왜? 꼬리를 물며 한동안 마침표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즐거웠다. 요즘도 가끔 길거리의 현수막이나 광고문구, 제품의 성분표 같은 곳에서 활자를 발견할 때, 새로운 매체 속의 마침표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한다. 방송자막뿐만 아니라 내가 얼마나 문장부호의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 혹은 그것들의 도움을 받아왔는지도 깨달으며 즐거워한다.


나는 나를 이루는 익숙한 세계에서 살아가느라 몰랐던 다른 저편의 낯선 것을 볼 때 느끼는 오묘한 기분을 좋아한다. 그게 뭐가 신기해?라고 비웃을 만한 사소한 발견이라도 좋다. 나는 이걸 다른 세계가 내 세계로 들어오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그 감각을 최대한 천천히 음미하듯 느끼려 하는 편이다낯선 기분은 지금밖에 느낄 수 없으니까, 낯선 것은 인식하는 순간 곧 익숙해져버리니까. 이번에는 방송자막과 블로그 글쓰기 포맷 같은 것이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동안 멀쩡히 잘만 사용해 왔으면서도 문득 이 구조가 낯설어지는 순간, 나는 이 세계에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순간 머릿속에는 무수한 정보들이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 편견을 빼니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는 과정이 꽤나 즐겁다.

이전 04화 종이 만지는 일을 하시나 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