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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Jul 23. 2023

종이 만지는 일을 하시나 봐요

일 바깥에서 나를 발견하기

손톱은 인간에게 여러 쓸모가 있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길어서 자주 정리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좀 성가시다. 특히 일할 때 키보드와 마우스를 자주 사용하고 그 외에도 손 쓸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손톱과 손끝의 경계를 이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건 방식을 쓰고 있어 손톱 길이가 조금만 길어져도 생활에 큰 불편을 느낀다. 게다가 손톱이 긴 채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손톱 단면이 아프다고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긴 것보다는 바싹 깎인 상태를 선호하는 편이다.


손이 자주 가는 만큼 손톱은 스스로 정리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네일숍에 들러 네일아트나 네일케어를 받기도 한다. 내 방식에 신뢰가 안 생길 때, 손이 밋밋해 보일 때,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혹은 전문가의 손길에 맡긴 뒤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관리하고 싶을 때 그렇다.

 

방문 빈도가 낮은 만큼 단골일 정도로 자주 가는 곳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곳보다는 가던 곳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장소들 가운데, 동선이 짧고 적당한 거리감이 있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되면서 동시에 싸늘한 정적이 흐르지는 않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자주 찾는 곳이 있다. 그곳에 오랜만에 방문해 손톱을 깎고 큐티클을 정리하고 영양제도 바르던 중에 네일리스트가 문득 말했다.


“종이 만지는 일을 하시나 봐요.”


우리는 거의 분기별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나눈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내심 놀랐다. 마치 점집에 갔는데 대뜸 무당이 내 근심거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정곡을 찌르며 “넌 이거 말고 그거 조심해야 돼” 같은 말을 들었을 때의 신선함이랄까. 또 내 일을 종이 만지는 일이라고 딱히 인식한 적은 없는데 그의 말을 듣자마자 책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종이 만지는 일일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알게 된 건지가 너무 궁금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너무 신기해요.”

“종이에 베인 상처가 많이 있어서요.”


네일리스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눈에는 안 보이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자잘하게 엄청 많이 있어요.”


실제로 나는 부주의한 성격 탓에 손에 상처가 많이 나는 편이고, 그것은 종이보다는 주로 칼을 사용하다 생기곤 했다. 마무리 단계의 교정지를 실제 책의 판형에 맞춰 잘라볼 때, 완성된 표지를 출력해 같은 크기로 어슷어슷 잘라볼 때 주로 다친다(게다가 기본 날의 방향 탓에 왼손잡이는 칼을 사용하며 손을 다칠 확률이 더 높다... 고 생각한다). 그때 내게 칼에 베인 상처는 없었다. 종이에 베인 상처도 그렇다. 종이에 베였을 때 아파죽을 것 같았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쓱 지나간 찰나 심장이 철렁한 뒤 찢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온다. 피는 멎는가 싶다가도 누르면 다시 흘러나오기를 한참이다. 멎은 것 같은데도 왜 자꾸만 눌러서 확인하고 싶은지. 그런 면에서 작지만 존재감이 큰 상처. 그것 역시 없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손을 매만지고 정리하는 사람들의 손끝에는 그 자잘한 상처도 보이거나 만져지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종이를 만지거나 키보드를 만질 때 미끄덩한 기분이 싫어 핸드크림을 잘 안 바르는 내게, 손이 아주 건조하니 핸드크림을 자주 발라주라고 당부하며 손 관리가 끝났다.


내 손에는 작고 여린 여러 개의 상처가 존재한다. 커다란 상처는 눈에 띄어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며 보듬고 신경 쓰지만 작은 상처들은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굳은살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놀랍다. 매일같이 손으로 종이를 만지는 일을 하는 내가, 매일같이 타인의 손을 만지는 사람에 의해 발견된다는 점이.


비슷한 경험은 다른 곳에서도 종종 한다. 예를 들면 머리를 하러 헤어숍에 갔을 때, 미용사가 이런 말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스타일 변화 없이 여기서 여기까지(어깨를 기준으로 10센티 안팎) 계속 커트만 반복하셨네요.”  

“헉.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게 길러진 상태예요.”


당시 무겁게 떨어진 머리가 마음에 들어 같은 스타일링을 몇 개월에 걸쳐서 기계처럼 반복하다가 다른 스타일링을 하려 할 때 들었던 말이다. 처음 방문한 곳이었는데도 미용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내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래도 한 번씩 이렇게 정리해 주는 게 좋아요. 가마 방향도 바꿔주면 좋고요, 하면서.


내 생각과는 달리 잠을 잘 못 자고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한의사의 말, 평소에 오른쪽 방향으로 몸을 튼 채 오래 앉아 일하고 있다는 헬스 트레이너의 말 등을 들으며 나는 내 일의 바깥과 타인의 일 안쪽에서 자주 발견된다. 어쩌면 내가 발견당하기 쉬운 단순한 사람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될 때 나는 크게 놀라고 그 사람들의 시간을 좀더 신뢰하게 된다. 그런 말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나에게도 그런 면이 조금은 있다. 나를 놀라게 한 네일리스트처럼 갑작스럽거나 날카롭진 못하지만,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언어습관이나 자주 쓰는 문장 어투가 귀에 들어올 때 그렇다. 구어체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어체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어순을 특이하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괄식 혹은 미괄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말할 때 감탄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있고 놀라움은 짐짓 보류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원고를 읽는 사람이니 글을 볼 때 주로 그런 것들을 발견하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것 말고도 나도 모르게 불쑥, 타인을 발견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남이 나를 발견하는 것은 크게 받아들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을 법한 굳은살 같은 감각은 그저 일상적인 것이라서 알지 못할 뿐.


책의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왔기에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사람들이 쌓아온 시간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사람에게 독자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를 궁금해해온 나였으니까. 에세이 혹은 산문집이라 일컫는 책들에 대해 사람들의 사견이 여럿 있을지언정 내가 이 이야기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다. 누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 나아가 한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믿는 누군가의 일상이 만든 고유함이라는 것을 믿는다. 나는 언제나 그 이야기들을 귀하게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싶다.


나는 늘 사람이 궁금하다.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나의 일을 하는 시간 동안 다른 저편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시간이 우연히 교차하는 지점.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 무한한 호기심이 새롭게 생긴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일지 또 나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발견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 그런 사람들을 자주 궁금해하고 또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또한 내가 오래 해온 일이 가진 단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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