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손을 들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밥을 먹을 때, 글씨를 쓸 때, 운동을 하거나 손을 들 때 당연하게 사용하는 손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오른손잡이이거나 왼손잡이일 것이다. 반대로 밥을 먹을 때, 글씨를 쓸 때, 운동을 하거나 손을 들 때. 한 템포 생각한 후 실행해야 하는 당신도 어딘가에 있겠지?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나와 같은 교정당한 왼손잡이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면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일지도.
어릴 적 분명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던 것 같다. 글씨를 쓰라고 하면 왼손으로 썼고, 젓가락질을 해야 하면 왼손으로 했으니까. 누군가 손짓하면 당연하게 덥석 내민 손은 분명 왼손이었으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의 어른들은 나의 왼손 활용 능력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양쪽 모두)는 내 왼손 젓가락질을 보고 밥상머리 예절이 안 되어 있다며 호통을 치셨고 초등학교 선생님은 왼손으로 받아쓰기하는 나를 오른손으로 쓰게끔 ‘교정’했다.
나는 틀렸고 그들은 옳다는 말에 대항할 말이, 초등학생인 내게는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로 할아버지의 눈에 안 띄게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선생님께 손등을 찰싹 맞아가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왼손을 사용했다. 동시에 억울했다. 왼손 젓가락질이 옳고 그른 것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쟤처럼 하라’는 다른 친척들에 비해 숟가락도 젓가락도 ‘바르게’ 쥐었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다른 친구들보다 글씨도 ‘바르게’ 썼는데, 단지 그 기술을 왼손으로 선보인다는 이유로 내가 하는 행위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은,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참담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교정을 당하다 보니, 왼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른손으로도 가능해졌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왼손으로 글씨 쓰는 기술은 이제 퇴화하여 이제 오른손으로만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젓가락질은 여전히 왼손으로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자리에 간다면 천천히 느적느적 오른손을 사용할 줄 안다.
여전히 헷갈리는 것들도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기술들이다. 가위질이나 칼질 그리고 포크질 같은 것. 이런 기술들은 솔직히 어느 손이 편한지 혹은 옳은지 잘 몰라서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사용한다. 언젠가 왼손잡이용 가위가 있다고 해서 사용해 보았는데 어쩐지 손엔 안 맞는 느낌이었다.
아마 나와 같이 교정당한 왼손잡이들 가운데는, 오른손잡이용 가위나 칼을 왼손으로 사용하는 불편함에 손이 익어 그게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바느질 같은 고급 기술 분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왼손으로 몇 바늘 꿰매다가 한 템포 늦게 깨닫는다. ‘아. 나 왼손잡이였지’ 하고.
이렇듯 왼손을 오른손으로 교정해야 하는 상황을 여러 번 맞닥뜨리다 보니 이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 날도 있었다. 의식하다 보니 오른쪽과 왼쪽은 더욱 헷갈렸다. 체육시간에 태권도를 배울 때도 혼자서 방황하며 왼발과 왼손을 동시에 내밀었다. 남들과 다르게 거울 모드가 되기 십상이었다. 자주 헷갈리기 때문에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감각은 오히려 나를 더 궁지에 빠뜨렸다. 왜 수업 시간 선생님은 질문이 있거나 발표할 때면 오른손을 들라고 말하는 걸까. 나에게는 어느 손을 들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손을 들 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호흡 느렸다.
그런 내게 힌트가 되어준 것은 내 오른손 손목에 찍힌 자그마한 점이었다. ‘이곳이 오른쪽이다’라는 표식처럼 찍힌 작은 갈색 점을 발견한 뒤론 항상 오른 손목을 응시한 뒤 오른손을 들었다. 그건 오른쪽이 어디인지를 판단한 내게 다시 한번 찍어주는 확인 도장 같은 거였다.
어쩌면 나는 애매한 양손잡이가 아니었을까. 양손잡이라면 무릇 오른손으로도 하는 일을 똑같이 왼손으로도 대등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오른손으로 하는 일을 왼손으로 잘 못하고 오른손으로 하는 일은 왼손으로 잘 못했으니까. 그때그때 편한 쪽이 달라서 직접 양쪽 모두를 해봐야만 알 수 있다. 당연히 왼손이 편하겠거니 시작했던 일도 오른손으로 능숙하게 하는 경우가 있고, 당연히 오른쪽 힘이 더 세겠거니 했던 일도 실은 왼손이 더 센 경우도 허다했다.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모호한 감각은 내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키가 자라면서 내 오른쪽 손목에 찍힌 점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모호한 점은 잘 사라진다고 한다니 좌우 구분을 위해 응시하지 않았더라면 있는 줄도 몰랐을 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도 나는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기 전 습관처럼 오른쪽 손목을 본다. 점을 확인하는 대신, 이제는 거기에 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오른쪽을 인식한다. 이제는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든 글씨를 쓰든 그 외에 무엇을 하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좌우 구분에 대한 압박이 덜해지고, 내키는 쪽 손을 뻗어 내키는 물건을 사용하고 내키는 대로 활용한다. 뭐든 편하고 잘할 수 있는 쪽이 나에게 옳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최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킥판을 잡아야만 물과 친해질 수 있는 초보지만 꽤 재미를 붙이며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전 자유형을 배울 때 강사님이 팔을 돌리고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물었다.
“혹시 왼손잡이 있으신가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들었다. 그는 왼손잡이라면 숨을 들이마실 때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오른 손목을 보고, 오른쪽을 확인한 후 오른쪽으로 열 번 왼쪽으로 열 번, 혼자서 반복하여 연습해 보았다. 당장은 오른쪽이 더 편한 것 같아서(고개가 더 잘 돌아간다) 오른쪽으로 연습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중에 어느 쪽이 더 편하고 능숙해질지는 모르겠다. 이 자유형이 배움의 끝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지금껏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에 의하면 나는 힘은 왼쪽이 더 세고, 운동능력은 오른쪽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활동 영역으로까지 생각이 뻗어나갈 수도 있겠으나, 속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꼭 내가 교정당한 왼손잡이라서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처음 배우는 때에는 이런 고난과 역경이 따르겠지. 생각해보니 이쪽이 편하고 생각해보니 저쪽이 편한 일련의 과정들. 하다보니 어떻게 되는 과정들. 그리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며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자신의 면면을 새롭게 경험하고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