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느긋 Aug 14. 2023

새삼스럽다 또는 자연스럽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언젠가부터 여름이 오면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올여름이 우리의 남은 삶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며 지구온난화에 대해 경고하는 말들이 들려오기도 했다. 아마 내년 여름에도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다. 매년 다음 계절을 끌어다 미리 마음에 담다 보니 겨울 지나 봄이 온 뒤부터는 시간이 조금씩 빨리 가는 것을 느꼈다. 솜사탕 같은 목련을 볼 때라 생각했지만 바닥에 떨어져 짓무른 잎들을 발견했을 뿐이고 벚꽃이 이렇게 빨리 피었나 싶었는데 어느덧 꽃비가 내린 뒤 초록 잎이 서둘러 돋아나고 있었다. 평소에 만끽해 오던 순서와 상관없이 계절이 뒤섞인 듯했다. 그럼에도 피어야 할 꽃들은 피었고 돋아야 할 새순은 돋아 신록 가득한 여름이 왔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며 그 변화를 눈에 담았다.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낄 때마다 입버릇처럼 “너무 빨리 더워지는 것 같아” “장미가 벌써 피었다고?”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러나 “벌써 피었다고?” 하던 장미가 5월까지 계속 피어 있다가 제 시기를 맞은 후에야 저물고 만 것을 볼 때면 성급하게 벌써를 외친 자신이 머쓱해지기도 했다.


능소화 역시 그랬다. 나는 우리 동네의 능소화 스폿을 몇 군데 알고 있다. 능소화를 보러 사람들이 찾는다는 북촌 한옥마을처럼 무성하고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고 주로 내 산책길인 대로변의 길가에 종종 피어 있었다. 도심 속에서, 각종 광고문구가 적힌 현수막들 사이로 기어코 고개를 내밀고 있는 무성함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름 모를 이의 마당 안에서 자라다 조금씩 바깥 벽을 타고 내려오는 잠깐의 외출보다, 여기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다가 시간의 풍화를 맞은 뒤에야 개화하는 모습이 좋았다. 딱 그 계절에만 자신을 가리던 벽과 광고판들을 뒤덮어버리는 끈질김 같은 것이.


늦은 밤 직선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의 어둠과 돌벽의 균열을 가르는 초록의 곡선 사이로 고개를 내민 잘 벼린 주황색 꽃에 자주 시선을 빼앗겼다. 꽃은 언제고 피었을 테지만 올해 처음 발견한 것은 6월 초쯤이었을 것이다. 장미가 벌써 지네 마네 생각하며 길을 걷다가 그 꽃을 보고는 놀랐다.


“원래 능소화가 이맘때 피었던가?”


능소화는 여름이라는 이미지는 머릿속에 있었으나 그게 초여름인지 한여름인지 늦여름인지는 헷갈렸다. 6월 초에 눈앞의 꽃이 피어 있었으니 초여름일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번에 친구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던 중, “능소화가 벌써 피었더라” 했더니, 친구가 “능소화는 원래 8월쯤 피는데!” 했다.


그때 우리는 계절이 예년에 비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류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정말? 그래도 8월이면 너무 늦는데.” 의외라서 검색을 해보니 그의 말대로 능소화의 개화 시기는 ‘7월에서 9월 사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6월의 개화는 빠른 것일까 제 시기를 맞이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벚꽃이라면 보통 2월에서 3월 사이 ‘전국 벚꽃 개화 시기’가 이미지화되어 온라인에 돌아다닐 텐데 능소화는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개화 시기란 것은 참 포괄적인 말 아닌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그 시간이 지나면 땡 하고 숨이 죽어 세균이 득실득실한 독약으로 변하지 않듯이, ‘개화 시기’ 또한 통상적이므로 그 시기가 된다고 땡 알람이 울리며 숨을 참고 있던 꽃들이 파바박 피어나는 것도 아닐 테니까.


내가 본 능소화를 지구온난화의 예시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그냥 제때 제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내 눈에 빨리 띈 건지 판단하기에 그때는 아직 여름의 초입이었다.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꽃들 역시 수명이 있을 테니, 이르게 피었다면 이르게 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 정도는 해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여름이 더 깊어졌다. 나는 매일 같이 직선거리를 산책했고 어떤 날은 거리를 바라봤고 어떤 날은 사념에 빠졌고 어떤 날은 통화를 하며 그 자리를 지나갔다. 그날의 대화 이후로 매일같이 능소화를 관찰했던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나가다가 눈에 보이면 바라보면서 ‘오, 능소화!’ 하고 아니면 말았던 정도다.


그러다 얼마 전, 같은 거리를 똑같은 자세로 똑같이 걸어가다가 꽃을 보곤 걸음을 멈추었다.


‘어? 아직도 피어 있네?’


6월 초인가에 봤으니 이제 거의 석 달째 접어들었는데도 같은 곳의 능소화가 똑같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아니, 그때 봤던 것보다 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6월에도 가득 피어 있고 7월에도 아마 가득 피어 있을 테고 8월에도 여전히 가득 피어 있는 이 능소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중간에 장마와 태풍이 지나갔을 텐데도 꽃은 싱싱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이란 원래 무성하게 피었다가도 곧 지는 법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찾아본 개화 시기인 ‘7월에서 9월 사이’가 모두 포함될 것이다.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능소화는 원래 한 번에 흐드러지게 피기보다는(이미 충분히 흐드러져 보였으나) 개화 기간 내내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이라고 한다. 8월에 만개한다고 하니, 8월에 핀다는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조금 맥이 빠졌던 것은, 능소화에 대해 찾아보다 보니 능소화는 원래 그런 꽃이고 그렇다는 걸 인터넷 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나가며 예쁘다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세히 알아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은 나 자신도 우스웠다. 아마도 꽃은, 그것이 6월이든 7월이든 8월이든 관계없이 제 시기에 맞게─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초록 잎을 내고 주황색 꽃을 피우고 꽃이 떨어지면 새로 또 피워내고 있었을 텐데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다 발견하고 또 지나가다 발견하며 그 현상을 퍽 새삼스러워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이 많이 더워진 것도 사실이니 아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테지만, 비슷한 시기에 피고 비슷한 시기에 떠난다는 큰 줄기는 같아 보였다.


나는 주위의 변화를 자주 놀라워하는 편이다. 그것은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에 모두 포함된다. 관심사일 경우 더 자주 발견하고 아닐 경우엔 오랜만에 놀란다. 오랜만에 발견하여 놀라는 것들에는 대개 ‘새삼스럽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울 일인가 싶다. 인간으로서는 꽃이 생각보다 더 오래 그곳에 남아 있어 놀라울 테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제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을 텐데. 꽃 입장에서는 “저 녀석 맨날 휘릭휘릭 지나가더니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여길 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새삼스러울 것도 자연스러울 것도 없이,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테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발견해 주기를 바란 것도 없이. 오늘 틔우기로 한 꽃을 오늘 틔우고, 오늘 걸어가기로 한 직선거리를 오늘 걸어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뭐, 가끔 새삼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발견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전 10화 비로소 깨끗해진 마음으로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