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l Schwiegertochter”의 셀프 타이틀 싱글 리뷰
지금에 와서 방법론으로서의 블랙 메탈이 가진 수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블랙 메탈이라는 문법이 요구하는 조건들이 장르음악의 생산자와 소비자 양자에게 하나의 도식으로서만 포착되는 시점에서, 블랙 메탈은 저급한 키치로서만 성립 가능하다. 남한의, 특히 서울 홍대 언저리를 기점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된 블랙 메탈 씬의 경우, 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진부한 시도들이나 시장의 몰락을 이끈 여러 파행적 계기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런 위기를 마찬가지로, 어쩌면 더욱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 공간성의 파산과 주체의 파산 이후에는, 컬트로서의 블랙 메탈이라는 기표만이 - 요컨대 블랙 메탈이라는 유령이 장르음악시장을 떠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라는 접두사로 호명되는 국면을 목격하고 있다. 자크 데리다가 공산주의의 유령을 소환한 맑스를 현대 생활세계의 유령으로서 다시금 오늘의 담론장에 소환해낸 것처럼, ‘포스트’라는 접두사로 호명되는 이데올로기들은 구태한 과거의 토대를 적극적으로 이탈하되 한 편으로는 이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목적성에 따라 “재전유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적 형태로 재전유해오는 전략을 따라 나아간다. 그러니까 옛날의 ‘진짜(TRVE)’는 망치질당하고 무너져서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이는 기실 중요하지 않다. ‘진짜’ 이후의 사람들은 ‘진짜’의 유령을 보고 이를 이야기한다. ‘진짜’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중요해지는 것은 그 진짜가 누구를 위해 재전유되었고 그를 위해 부여된 당파적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는지다.
블랙 메탈 씬이 맞이한 ‘포스트 블랙 메탈’은, 이전의 ‘진짜’가 가지던 선험주의와 주관주의를 넘어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전략을 향해 나아간다. 한 가지는 슈게이징과 포스트 록 방법론을 동원해 ‘블랙게이즈’와 같은 형태로 구축하여, 블랙 메탈 문법을 메탈 씬이 아닌 ‘피치포크’와 ‘힙스터리즘’으로 대표되는 얼트 씬의 방법론으로 재전유해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장르음악생산의 장 내부에서 토대가 되었던 이전의 “씬”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여기에 완전히 변혁을 가져오는 행위다. 한편 역시나 이전의 블랙 메탈을 이탈하고 파괴하지만 한 편으로는 오히려 복고주의적•반동주의적 위치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실천도 존재한다. 근래의 다크스론(Darkthrone)이 펼치는, “New Wave of Black Heavy Metal”이라고 명명된 장르의 음악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론 모두 ‘황무지가 된 블랙 메탈 씬’이라는 계기가 촉발한 ‘소극적 이탈’에 불과했고, 새로운 ‘진짜’를 호명할 적극적 강령의, 혹은 실천적 매니페스토의 형태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이 시점에서, 다국적 블랙 메탈 프로젝트 메탈며느리(Metal Schwiegertocher)와 이들의 새 셀프 타이틀 싱글은, 블랙 메탈이지만 동시에 ‘포스트 블랙 메탈’의 적극적이고 이미지주의적인 실천으로서 등장한다.
본래 트위터 계정으로서의 ‘메탈며느리’는 일종의 ‘기 드보르적 농담’에 다름 아니었다. 가령 트위터 계정 ‘메탈며느리’는 정체성을 이미지화하는 주요한 기표로 메탈이라는 장르음악의 ‘이미지’들, 가령 ‘TRVE’, ‘콥스 페인팅’, 그리고 메탈 씬 혹은 블랙 메탈 컬트를 아우르는 이런 저런 담론들을 드러내는 ‘블랙 메탈 이미지의 전시장’이다. 그런데 ‘메탈며느리’의 팔로워들은 대개 장르음악시장이라는 장 외부에 존재하는, 즉 장르음악 자체가 아니라 기표로서의 ‘메탈’을 소비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서 ‘메탈며느리’는 컬트로서의 메탈을 내화된 채로 다루지 않고 대자존재적 위치에서 접근하는 묘기를 부린다. 그러니까 수행성의 측면에서 ‘메탈며느리’는 블랙 메탈이라는 신화의 단순한 신봉자가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블랙 메탈을 자유자재로 재배치하고 ‘갖고 놀기’를 하는 트위터 계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주의적 실천은, 마침내 발매된 싱글 “Metal Schwiegertocher”를 통해 어떠한 완결성을 갖게 된다. 가령 이전의 메탈며느리가 ‘기 드보르적 농담’을 통해 메탈 컬트를 ‘산보’하며 해체하던 ‘진짜’들, 예컨대 우리가 ‘똥블랙’이라고 부르는 요소들, 가령 사타니즘, 레디메이드 형식으로 생산된 듯한 진부함, 로파이 프로덕션들을 새 싱글 “Metal Schwiegertocher”는 모두 거꾸로 뒤집으며 거부한다. 블랙게이즈가 활용했던 리버브 중심의 ‘앳모스피어릭’한 작곡을 통해 구축되는 긴장감, 테크니컬/브루털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공간을 채우게 된, 깔끔한 디스토션으로 몰아 치는 리프들과 블래스트비트는 이전의 양산형 블랙 메탈을 문법적으로 이탈해 브루털 데스 메탈과 DSBM 그리고 앳모스피어릭 블랙 메탈 사이의 어딘가를 지시하며 표류한다. 그리고 ‘자생적 밴드 사운드’라는 기존의 장르음악 생산방식을 적극적으로 이탈하여, 다른 창작자들이 ‘메탈며느리’라는 기표를 차용해 와 그것의 내용을 ‘외삽’해주는 방식 역시 밴드 음악으로서의 블랙 메탈이라는 관념을 적극적으로 이탈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탈며느리’는 ‘TRVE’를 이야기한다. “Metal Schwiegertocher”는 여기에서 새로운 ‘TRVE’가 된다. 결국 “Metal Schwiegertocher”는 ‘진짜’를 실천적으로, 이미지주의적으로, 상황주의적으로 재전유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