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를 때
둘째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아이돌 누구 좋아해요?”
“글쎄, 딱히……”
“그러면 엄마는 요즘 어떤 노래 좋아해요?”
“어? 어…”
순간 이거다 하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스피커로 좋아하는 노래부터 짱짱하게 듣던 난데. 명품 가방엔 1도 관심 없으면서 음향장비만큼은 욕심을 내는 내가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니, 충격이었다. 음원 어플의 최근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보니 애들이 좋아하는 노래만 있었지, 내가 좋아서 들은 노래가 없었다.
노래뿐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딱히 재미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마음 가는 일이 없으니 손에 잡히는 일이 있을 리가. 마음이 붕뜬채로 불면의 밤과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만 이러나?’ 수다가 시급했다. 마음이 처질 땐 그보다 좋은 처방은 없다.
동네 친한 엄마들과 급만남을 가졌다. 모처럼 동네를 벗어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브런치 회동했다. 그날의 이슈는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있던 소설의 드라마 제작 소식이었다. 주인공으로 배우 누구누구가 캐스팅됐다며 다들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싱크로율 100%의 찰떡 캐스팅이라며 만족해하는데 내가 불쑥 찬물을 끼얹었다.
“난 그 배우 별론데. 그렇게 생긴 사람 별로. 연기도 별론데 왜 자꾸 캐스팅이 되는지 모르겠더라.”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져 놓고 아차 싶었다. 다들 좋다는데 굳이 왜 싫어한단 얘기를 했을까? 취향 존중 시대에 싫어하는 것 역시 취향이니 그럴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날의 대화 내내 나는 싫어하는 것, 짜증 나는 것, 힘든 것들에 대해서만 주구장천 늘어놓고 있었다. 투덜이가 따로 없었다. 아, 나야말로 별로네! 2차 충격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주변을 돌아보니 반려식물들도 시들시들, 집안도 엉망이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제일 먼저 스친 생각이 “여긴 어디? 나는 누구?”였다. 아침드라마 속 여주인공도 아닌데 이 무슨 단기 기억상실 같은 상황인지. 사춘기도 아닌데 정체성의 혼란이 심하게 왔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무기력했는지. 어쩌다 투덜이가 되었는지. 모든 문제는 나의 부재에 있었다.
일단 나부터 찾자! 내가 없는데 다른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야 무기력의 늪에 빠진 나를 건져 올리고, 불면의 밤을 건널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마음속에 커다란 현수막 하나를 내걸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습니다!> 본격적으로 ‘나’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기억 속 ‘나’를 쫓았다.
나는…, 그러니까 나는 말이에요… 나는 원래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으로 취향도 색깔도 표정도 주장도 뚜렷했다. 내가 누구의 어떤 노래를 왜 좋은지 그 이유까지 똑 부러지게 말할 정도로 나의 취향은 극명했다. 그때그때 좋아하는 노래, 드라마, 영화, 책이 있었고, 그것들을 찾아 읽고 보고 듣느라 바빴다.
넘쳐흐르는 감정과 영감을 주체하지 못해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설파했다. 급기야 친구들은 나를 국회로 보내자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때의 나는 자주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수시로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그랬던 난데, 총천연색으로 각각의 빛깔을 뽐내던 나의 취향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무색, 무취향의 인간이 됐을까? 어쩌다 ‘좋음’은 증발하고 ‘싫음’만 남은 투덜이가 됐을까?
일단 잃어버린 나의 취행부터 찾는 일이 시급했다. 내가 좋아했고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 사람들, 말들, 순간들 등등.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그것들을 주워 가다 보면 결국 나와 만나게 되겠지.
일상이 지루하고 무의미 하다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요즘 꽂혀있는 건 뭔가요? 요즘 관심 있는 건요? 요즘 뭐가 제일 재밌어요?”
대부는 쉽게 답하지 못하고 당황해한다. 당연하다.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우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가 궁금하다면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일단 살펴봐야 한다.
결국 시선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있다. 그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모르겠다면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자. 나는 나를 몰라도 알고리즘은 내가 뭘 좋아하고 뭐에 관심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속에 나만의 하찮은 로망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조각들은 하나, 둘 모아 실행하다 보면 ‘나’란 퍼즐이 완성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기공의 달인이 되는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 나다울 때 가장 힘이 세진다.
- 애니메이션 <쿵후 판다 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