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으로 이르는 길
두 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집중해. 집중 좀 할래? 집중하자.”
그런데 요즘은 이 ‘집중’이란 말을 잘하지 않는다. 한 독서모임을 통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을 읽었다.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한 번에 쭉 훑어볼 수 있는 철학 입문서 같은 책이라 철학이란 무게보다 쉽고 재밌게 읽었다. 그중 시몬 배유의 ‘집중과 관심’에 대한 얘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집중이 아닌 관심을 기울여라!”
보통은 집중과 관심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몬 배유는 관심은 집중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사전을 찾아봤다. 관심은 명사로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마음이나 주의를 뜻했다. 집중은 명사로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음이었다. 관심은 확장시키고 집중은 수축시킨다는 시몬 배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느낌이 왔다.
시몬 배유는 집중하기보다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지만, 관심은 그럴 수 없다. 집중은 마음이 없어도 하는 척할 수 있지만, 관심은 마음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다. 관심은 극도의 관심으로 확장되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몰입, 삼매경,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
-시몬 배유-
영화 소울에서 무아지경으로 광고판을 돌리던 남자가 생각났다. 나도 저렇게 무아지경에 빠져봤으면 하고 부러워했을 만큼 나는 몰입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집중력이 부족하고 주의가 산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게 없어 이룬 것도 없는 루저라고 자책했다. 몰입에 목말라 몰입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라면 뭐든 사서 읽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에 대한 갈증만 심해질 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자책했다. 이렇게 집중을 못 하다니!
시몬 배유를 만나고서야 내가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다. 몰입이란 어떤 행위를 하는 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몰입이란 음악가는 없고 오로지 음악만 존재하는 것. 무용수는 없고 오로지 무용만 존재하는 것. 화가는 없고 오로지 그림만 존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몰입이라, 너무 멋지지 않은가! 나는 몰입하는 나 자신을 꿈꿔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몰입이 됐을 리가 없다. 몰입하려고 집중했으나 정작 집중이 몰입을 방해한 꼴이었다.
그래서 이젠 아이들에게도 쉽게 말로 집중하라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 그 관심을 어떻게 실제로 행동할 수 있게 할 건지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본다. 수학 문제 좀 풀어라, 제발! 책 좀 읽자! 같은 부정적인 명령어보다는 부드러운 청유형 말을 더 많이 한다.
“수학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책에 관심을 가져볼까?”
그래 봐야 애들 입장에선 다 똑같은 잔소리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완전한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관심을 가진 티가 좀 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육아도, 일도, 내 삶도. 그런 나에게 시몬 배유는 응원의 말도 잊지 않았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다.
-시몬 배우-
로망도 마찬가지다. 일상이 지루하고 무의미 하다면 일단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보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언제 화가 나는지 등등. 나는 나를 잘 몰라도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의 관심사는 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뭐든 관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숨어있던, 혹은 잊고 있던 로망이 짜잔~! 하고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