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중년이 다 된 남동생이 한국에 왔을 때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를 보고
세월이 물 흐르듯 지났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졌음에도 그는 영원히 나의 동생인 것은 어쩔 수 없어 우리 둘만 있을 때 오누이는
어릴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럴 때면 우리는 지금 어른 탈을 뒤집어쓰고 어른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내 앞에서는 아직도 어린 동생을 바라보면서
순수하고 착한 동생에 비해 욕심 많고 말괄량이던 나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던가.
나는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집 밖에서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때 동생이 맛난 사탕 한 개를 내밀었다.
"자 먹어, 아버지가 누나 주라고 했어."
고무줄을 뛰면서 나는 웬 사탕인가 싶어 그것을 날름 받아먹고 또 놀았다.
그리고 잠시 후 집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방에서
" **이가 사탕 주던?"
이라고 물었다. 나는 그저 사탕 한 개가 더 먹고 싶은 마음에
"아니요."라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신의 무릎 앞의 사탕 봉지에서 선뜻 사탕 한 개를 더 주었고 나는 또 집 밖으로 나와서 놀았다.
그렇게 놀다가 집으로 갔더니 동생이 장독대 앞에 꿇어앉아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지 않은가.
동생은 내게 눈을 흘기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때 방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에게 사탕을 갖다 주라고 했는데 그것을 왜 네가 먹고 안 갖다 주었나?"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아버지가 그 사탕 한 개를 가지고 그렇게 동생을 벌 줄지 전혀 알지 못했고 나의 사탕 욕심으로 인한 거짓말 때문에 아무 죄 없는 동생이 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양심의 가책과 동생에 대한 미안함으로 충격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내가 동생에게 사탕을 받아먹었다고 말을 할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가 무서워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후 이 사건은
나의 기억 속에 가슴 아프게 자리 잡게 되었고 절대 잊히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벌을 받는 것만큼 한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때 어리고 귀여운 동생의 얼굴에 어리던 눈물방울을 생각하면 이리도 미안한데 나 역시 억울하게 벌을 받은 일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사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였는데 얼마나 열정이 넘치는지
중간고사 시험 점수가 나오던 날
틀린 개수대로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나 역시 손바닥을 맞는데 턱없이 많이 내리치는 것이 이상하다 하였으나 다 맞은 후 자리에 앉고 보니 내 답안지가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에게 가지고 갖더니 진짜 내 답안을 본 선생님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안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반 아이들은 놀라서 입을 벌렸고.
그때 다른 아이가 맞아야 할 손바닥을 대신 맞은 것이 억울해서 나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맞지 않아도 될 학생을 때린 가사 선생님은 허탈해진 탓인지 내 다음 학생부터는 손에 힘이 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가사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 속에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때론 억울한 일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거 같다.
지나서 보면 누구 대신 손바닥을 억울하게 맞았던 것보다는 달콤한 사탕에 눈이 멀어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었던 나 자신이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왜일까.
그래서
삶에서 뭐든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