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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빵

by 미셸 오

첫 기차는 새벽 5시 40분이다.

겨울의 새벽은 밤처럼 까맣다. 아침을 거른 체 기차에 몸을 의지하고 서울로 가는 날. 새벽기차 안에서 거의 잠을 잔다. 아침 햇살이 차창 안으로 쏘아질 때 서울역에 내려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에 덩달아 휩쓸려간다.


예전에 새벽기차라는 노래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부산역에서 밤에 친구와 밤기차를 탄 기억이 있다.

무슨 용기였던지 좌석표가 매진이어서 입석표를 샀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지금은 새로 지은 역 건물이지만 오래전, 구 서울역에 내렸을 때 새벽이었고 추웠다. 그런데 역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던 국밥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주문하자마자 내 앞에 놓인 뜨거운 국밥은 황금빛이 났다. 노랗게 잘 말려진 시래기에 구수한 된장이 어우러진 국밥은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고 맛도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국밥집을 나선 후 바라본 서울의 거리는 따스한 국밥과는 대조적으로 낯설고 어두웠다. 그대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을 접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살던 고향을 떠나 상경한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괜스레 울적해졌다. 우리처럼 서울 구경하러 온 목적이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의 그 황량함에 괜히 감정 이입을 해 보는 것이었다. 곧이어 날이 밝았고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둠 속에 가려졌던 건물들이 경쾌하게 얼굴을 내밀면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날에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피어나던 국밥집의 하얀 연기와 그 맛이 찐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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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을 때 싸고 맛난 국밥집은 없었다.

역 안의 가게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먹을 때면 목이 뻑뻑한 것이 넘길 때부터 불편했고

따뜻한 국밥에 익숙해진 위장이 반란을 일으키곤 하였다.

전국, 아니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햄버거를 우적우적 입안에 넣고 길을 나설 때마다 날의 그 국밥집을 문화재로 지정했어야 했다고 되새기곤 했다.


그러나 그 후 자주 서울을 오가면서 나의 그런 생각 점차 희미해졌다.

어느 날부터 서울역 2층에 푸드코트가 생겼고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빵집도 발견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빵이 아침이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빵집.

특히 빵 속에 콕콕 박힌 올리브는 을 때 짭짤한 된장 맛이 났다. 게다가 밀가루 음식을 먹었을 때 느꼈던 속이 더부룩하던 불편함이 없었다.

오래전, 프랑스인들이 커다란 바게트 빵을 들고 가는 흑백사진 아래서 나는 그들의 올리브 빵을 먹는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프랑스 파리 기차역 건물에서 한국의 국밥을 먹는 프랑스 인들을 본다. 그들이 숟가락으로 시래기국밥을 넘기는 그 식탁 옆 벽에는 한국의 할머니가 가마솥 뚜껑을 열고 국밥을 푸는 흑백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올리브 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후,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예전의 그 낯섦과 두려움이 아닌 익숙한 몸짓으로 서울역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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