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안에 있던 전신 거울을 버렸다.
20년 동안이나 나와 같이 했던 거울이었다. 이사를 세 번이나 했으면서도 용케 거울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를 말하자면,
집을 나가기 전에 나의 전체를 비추어질 물건으로 전신 거울은 내게 퍽 쓸모 있는 물건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거울을 자주 본다'는 말에 내가 가진 거울에 대해 새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다 거울을 좋아한다.
성격이 깔끔해서 옷도 깨끗하게 입어야 되고 얼굴에 뭐가 묻은 체로 나가면 큰일이다.
그래서 거울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거울을 자주 보니 분명 외모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울이 만족하는 얼굴과 외양을 갖추기 위해 화장품이며 옷이며 가방을 많이도 샀던 적이 있었다.
미니멀한 삶이 유행할 때 나 역시 많은 옷. 가방 등을 버렸고 화장품도 거의 안 사게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거울을 볼 때 추레하게 느껴지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때면 옛날의 습관이 발동해서 아이섀도를 사거나 파우더를 샀다. 물론 그것들은 아직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시대에 화장품은 거의 쓸모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사놓고 못쓰는 것이 립스틱과 파우더이다.
그러나 옷은 그렇지 않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옷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게 되더라.
내 전신 거울은 옷이 좀 늘어지거나 보풀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옷이 나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옷이 날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놈의 옷은 일 년만 되면 유행도 지나고 후져 보였다.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옷값의 지출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나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 거울이라면 과감히 버려야 했다.
거실 가운데 서 있던 거울을 밖으로 들어내고 관리실에서 딱지를 사다 붙였다.
20년간 사용해 온 친구 같던 거울의 면은 아파트의 오가는 사람들을 환하게 비춘다.
위풍도 당당하게.. 어쩌면 녹도 슬지 않고 저렇듯 깨끗하게 반짝이는 것일까?
문득 금도 티도 없는 거울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날마다 먼지가 내려앉기 무섭게 수건으로 닦아냈던 거울의 얼굴이 너무너무 깨끗해서.
그 거울은 이틀 동안 아파트 재활용장 문 앞에 수거 딱지를 붙인 체 서 있었다.
쓰레기를 비우러 갈 때마다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였다.
그 거울에 잘 보이기 위에 그동안 허비했던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거울을 버리고 난 거실의 빈 그 자리에 몬스테라 화분을 갖다 놓았다.
창으로 들어오던 빛을 반사하고 또 반대편의 물건들을 가득 담았던 거울이 없어져서 그런지
집안의 곳곳에 햇빛이 차분하게 비추이는 것 같다.
게다가
전신 거울을 치우고 나니 집안의 다른 거울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화장실의 거울.. 큰방 욕실의 거울.. 현관에 있는 팬트리 문에 달린 거울..
화장대의 거울... 집안에 이렇게 거울이 많았다니 놀라웠다.
집안의 이리저리 다니면서도 거울에 나를 얼마나 비추어 보았을까. 피곤한 삶이었다.
거울.
이제 적당히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