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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ug 23. 2022

#한 여름밤의 #산책

오늘이 처서라는 데 늦은 오전은 너무 후텁지근하다.


어제는 해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숨이 턱 막혀서 중간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저녁이면 그래도 선선해 지리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산책로 주변에 심었던 해바라기는 미처 노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다 시들어서 고개를 숙였고 한 달 전부터 활짝 피었던 달리아는 아직 그대로 예뻤다.

이 사진은 지난주에 찍은 겁니다.

내가 정원 있는 집을 가지게 된다면 꼭 달리아를 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걷는 딸은

"해바라기는 사람 얼굴 같아서 징그러.."

그런다.  게다가 해바라기 얼굴이 길게 축 늘어뜨려져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 몸에 이리저리 부딪힌다.

반면 달리아는 하늘을 향해 꼿꼿이 아담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게다가 색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길바닥에는 하천에서 올라온 것인지 땅에서 기어 나온 것인지 지렁이가 많다. 난 지렁이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외면하며 걷는다.

그뿐이랴.  흡사 시커면 흙을 뿌려놓은 듯  작은 개미들이 곳곳에 모여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밟을까 봐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다.  개미들의 어느 한 마리가 내 발을  타고 기어오른다면 수많은 개미들이 따라붙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개미들의 집단은 보기만 해도 무섭고 징그럽다.

더 놀라운 것은 하천가를 따라 웃자란 풀들이었다. 풀이란 원래 사람 종아리 길이를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풀들은 사람들 키보다 더 커져서 흡사 나무처럼 보이는 것이다. 윙윙대는 하루살이떼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를 빨고 가는 모기 놈들.

달리아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음

하천을 가로지른 목재 다리를 건너면서  얼마 전에 열렸던 일일 장터를 떠올렸다.

이 산책로를 따라 넓은 광장에 이르기까지  일일장터가 열렸을 때는 사람들의 왁자함과 고기 굽는 냄새와 커피 냄새가 공중에 붕붕 떠다니고 액세서리, 향수, 건어물, 옷을 파는 가게들로 분위기가 경쾌하였었다.

우리는 그때 갓 구운 타코야끼를 입을 호호 거리면서 먹고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그냥 향이 좋아서 일랑일랑 향수를 사 가지고 돌아왔었다. 그렇게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로 흥성거림을 맛본 것이 오랜만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자연도 사람에게 힘을 주기는 하지만 무더운 여름에 걷는 것은 고역이다.

산책은 역시 3월부터 5월의 봄에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볕도 화창하고 신록도 푸르러 감에 따라 얼마나 희망적이던지..

단. 한 여름의 저녁 불빛에 피어나는 커피숍과 국수가게 등 음식점들의 빛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찬란하고 설렘을 안겨주기는 한다.

얼마 전에 새로이 단장한 국숫집은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문을 열어젖힌 체 국수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한 달 새에 고깃집이 두어 군데 더 생겼고 그 가게 안에는 역시 저녁의 한 끼를 먹는 사람들의 만족스런 얼굴들이 가득하다.

우리도 저 새롭게 생긴 가게에서 국수도 먹고 고기도 먹자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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