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집에 갈 생각에 들뜬 나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웠다. 명절에도 집에 가보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손수 반찬을 해서 집으로 오시겠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배달 음식이나 가공식품 말고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퇴근길은 늘 스마트폰 쇼츠와 동행한다. 업무 시간 외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싶어, 짧은 영상이 무한 리플레이되는 쇼츠는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눈이 화면을 보고 있는 동안 내 몸의 신경들은 자율주행 모드가 되어 알아서 움직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길을 걷는 동안에도 내 몸은 알아서 속도와 거리를 계산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이 짧은 영상 메들리는 안식처이자 친구다. 밥 친구, 목욕탕 친구, 산책 친구,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디지털 분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에 도착하니 따뜻한 된장찌개 냄새와 어머니의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냉장고 안에는 며칠 전부터 지지고 볶았을 사랑과 정성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능숙하게 차리고 계셨고, 나는 감동적인 그 순간을 눈에 담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엄마, 나 씻고 올게요."
손에는 당연히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따뜻한 물줄기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 후, 나는 변기에 앉아 폰 화면을 꼈다. 어머니의 푸짐한 음식을 영접하기 전 장속의 그것을 비워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빨리 끝내고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 흥미로운 콘텐츠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끌어당겼다. 특히 반려견, 반려묘 콘텐츠의 사랑스러움은 내 정신을 완전히 빼앗는 데 성공했다.
볼일을 마쳤을 때, 내 몸은 이미 자동 모드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은 여전히 화면 속 영상에 갇혀 있었고,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습득된 기본 동작을 빠르게 처리하도록 명령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변기 뚜껑을 내리니 '쾅'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폰에 정신이 팔린 내 뇌는 이 묵직한 뚜껑 닫히는 소리를 물 내리는 소리로 착각하고 말았다. 내 뇌는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하고 '처리 완료' 등을 켰다. 나는 물이 시원하게 내려갔다고 굳게 믿으며 손을 씻고 홀가분하게 화장실을 나섰다.
동그랑땡에 잡채, 된장찌개에 각종 밑반찬까지.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골고루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정도로 풍성했고 나는 복에 겨워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 씻고 나오니 개운하겠다. 어서 먹어라. 엄마도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잡채를 들어 허겁지겁 먹으려다 말고, 다시 스마트폰을 켰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를 기다렸다가 함께 먹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정적.
"아이고, 이게 뭐야!"
어머니의 짧은 비명과 탄식이 화장실 문을 뚫고 나왔다.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잠시 기다렸다. 곧, '쉬이이익~~~ 쏴아아~'하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문을 열고 나오신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허저야, 너... 진짜 핸드폰에 정신 팔려서, 니 나이에 이렇게 깜빡깜빡하면 어쩌려고 그래! 똥을 변기에 그대로 모셔놓고 지금 밥이 넘어가니?"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아, 아니에요. 분명 누른 것 같은데?"
어머니가 이미 물을 내리셨지만, 나는 황당함과 죄책감에 변기 버튼을 또 한 번 더 눌렀다.
물은 시원하게 내려갔지만, 창피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밥상 앞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 앞에서 나는 얼굴은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마, 죄송해요. 진짜 정신 차릴게요. 오늘부터는 화장실에서 절대 핸드폰 안 보겠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다짐했다.
디지털 중독, 뉴스에서나 듣던 이야기지, 내 얘기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쇼츠 몰입이 나를 뚜껑 닫히는 소리와 물 내리는 소리조자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어머니가 내가 민망할까 봐 말씀 안 하시고 넘어갔다면, 나는 아마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혹시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실수를 한 게 없었나 두려움이 생겼다.
삶의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못했거나, 타인에 대한 존중 없는 행동을 나도 모르게 했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만큼 창피할 것이다.
오늘 '똥 사건'으로 밥상머리에서 가장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이젠 단 1초라도 내 영혼을 다른 데 두고 살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 대신 정신 줄 단단히 동여매고, 디지털 노예 대신 내가 진정한 주인인 시간으로 삶을 꽉 채우겠다.
'이제 내 똥은 나만 보는 걸로!'
내 프라이버시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