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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dd Apr 14. 2018

테세우스의 배

철학

소소하게 철학을 공부하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냥..내가 관심있는 것들만 다루는 그런 아주 라이트한.....글들이 될 것 같다.


최근에 "테세우스의 배"라는 말을 알게되었다.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때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플루타르크


이것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이다.

사물의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관한 난제?...난제일 것 까지 있나...


이 역설에 관해 다양한 답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원래 테세우스의 배를 배1, 판자를 다 갈아끼운, 원래 부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테세우스의 배를 배2라고 할 때, 이 둘 다 테세우스의 배다, 배1이 테세우스의 배다, 아니다 배2가 테세우스의 배다...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 테세우스의 배가 적용 될 수 있는 논제는 바로 "스타트렉식 순간이동"에서다.

스타트렉식 순간이동에서는 인간은 원자단위로 분해해서, 그 분해한 것들을 순간이동 하려는 공간에 가서 다시 재조립하여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즉, 내가 원자단위로 분해될 때, 나는 한번 죽는다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내가 순간이동하여 재조립되었다 한들, 그것은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의 "복제본"인가? 


여기서도 두가지 견해가있다.


1. 순간이동한 "나"는 복제인간이다.

2. 순간이동한 "나"는 복제인간이 아니다.


흥미롭다.


어렵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는 화재가 발생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이 복원된다.


그렇다면, 이 숭례문은 숭례문이라 할 수 있는가?


또, 테세우스의 배를 적용 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

바로 "뇌 이식"이다.


뇌 이식이라 하면 뇌를 전부 이식하는 그런 것을 상상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뇌의 "일부"를 이식한다고 생각해보자.

내 뇌에 타인의 뇌가 1%정도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1%니까 말이다.

하지만 점점, 2%...5%...10%..이렇게 점점 내 뇌에 타인의 뇌를 이식한다면?

이러다가 결국 100% 나의 뇌를 타인의 뇌로 바꿨다면?


그렇다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나"는 "내가"아니게 되는 것인가?

50%? 70%?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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