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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Aug 11. 2023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연꽃이 물위에 있는 것 같이


언젠가 시청앞 지하철역을 나오다가 직장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었다. 출근하던 길이라 바쁘게 걸으며 그녀의 하소연을 들었다.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힘들고 우울하다고 했다. 나는 달래듯 그녀의 손을 잡고 익히 들어온 법문을 말해주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 그러므로 남편의 행위는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그 때의 그 한마디를 안고 그녀는 한동안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이번엔 남편의 직장으로 나를 초대했다. 평소 불교에 관심이 깊은 남편이 사내에서 불교강좌를 주선했다는 것이다. 우린 저녁 먹을 시간도 아낀 채 서둘러 그 곳에 들어섰다. 그 날 오셨던 스님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출가하여 불도에 들어와보니 그 분이 바로 나의 부처님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가슴이 꽉 막혀오고 불쑥 눈물이 솟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전해져오는 어린시절의 고독과 좌절 그리고 출가해서 홀로서기까지의 거친 방황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강의 내내 그 분의 보석처럼 빛나는 눈과 법문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배고픔도 잊은 채 커다란 보물을 안고 나온 듯 기쁘고 풍족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그 후배는 시큰둥하게 투덜거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지루할 뿐이었다고.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란 나는 말을 잊은 채 조용히 걷기만 했다.

이렇게 큰 간극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이 그와 같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연꽃이 물위에 있는 것 같이... 법화경의 한 구절이 뚜렷이 다가왔다. 진흙탕 속에서만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의미를.. 파도처럼 감사함이 밀려들었다. 그 지리했던 삶의 고단함이 지금 이토록 부처님의 법문에 환희로 충만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내게 말해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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