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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Aug 11. 2023

'모차르트를 사과하다'에 붙임

잃어버린 지갑을 찾는 일과 자신을 찾는 일


어느 날 붓다가 숲 속의 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였다. 부유한 청년들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술과 놀이에 취해있을 때 함께 왔던 창녀가 지갑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그들은 붓다에게 어떤 여자를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여자를 찾아다니는 이유를 묻고 나서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지갑을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에 어떤 일이 더 중요한가?"

그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법을 들었고 환희하여 출가했다. 자기 자신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일에 몰두하기로 한 것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다. 한때는 소설을 쓰려고 매달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작가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수필이 더 좋아졌다. 시와 소설이 한 편의 영상이고 영화라면 수필은 소극장에서 상연하는 연극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함께 울고 웃고 말을 건넨다.  아름다운 수필은 오래된 친구처럼 가슴에 박힌다. 시처럼 아득하지도 않고 소설처럼 번거롭지도 않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쉬이 볼 수 있다.


거미줄 같은 희로애락의 삶에서 유독 나는 아련한 슬픔이 깃든 글들에 반하곤 한다. 그의 슬픔이 나의 그것을 희석시켜 주기 때문인가. 특히 찰스 램의 '꿈속의 아이들'을 읽을 땐 단 한 마디도 드러내지 않고 꿈속의 아이들로 형상화한 그의 잃어버린 사랑의 슬픔과, 정신 발작을 일으키는 누이를 굳이 떠맡아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램의 헌신적인 삶이 너무 아파서 나의 일상의 고달픈 일들은 그저 소소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의 '오래된 도자기'를 보라. 가난했던 시절의 갈망과 잃어버린 환희가 가슴에 절절히 다가오지 않는가. 나는 어느새 그를 닮고 싶어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여고시절 은사이신 이양자 선생님께서 팔순 가까이에 쓰셔서 등단하신 수필, '모차르트를 사과하다'는 나를 뼈아픈 자성으로 이끌었다. 그 한 편에 단아한 선생님의 일상과 고단한 삶 속에서 지키고자 했던 아름다움이 녹아 있었고, 수필이 지닌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과도 같은 반전의 경쾌함이 모차르트를 듣는 자녀와의 상반된 입장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사부님이 술을 드실 때마다 아들 둘을 모두 깨워 밤새도록 훈육을 하시곤 했던 터라, 술을 드시고 온다는 날에는 자녀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주며 일찍 잠을 재우곤 하셨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자녀들이 불안해했는지 그 후에도 얼마나 모차르트를 싫어했는지 아시고는 깜짝 놀라신 것이다. 나의 배려가 상대에게 뜻하지 않게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일이 어디 이뿐이겠느냐며 삶이 조심스러워져서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 보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모든 위대한 예술은 결국 완성된 인격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던 김용준 님의 예술에 대한 소감이 떠올라 망연해지는 것이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몰려다니던 청년들처럼, 오늘도 현실에 매몰되어 가장 중요한 일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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