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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30. 2021

카니예 웨스트 DONDA를 듣고.

칸예, 돈다, 음악, 신에게 바치는 다크 가스펠.



카니예 웨스트의 10번째 정규 앨범 DONDA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 21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27 트랙, 1시간 49분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글을 쓰는 와중 3곡이 추가로 업데이트 되어 총 30 트랙이 되었습니다.


지난 정규작이자 가스펠 앨범이었던 <Jesus Is King>이 2년 전 2019년에 나왔으니 사실 공백 기간이 길진 않습니다. 지난해 미국 전역이 코로나19로 초토화되는 와중 대통령 선거까지 나갔던 행보를 생각하면 나름(?) 납득 가능한 기다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음악 팬들과 힙합 마니아들에게는 20년처럼 긴 시간이었습니다. 칸예의 변덕 때문이었죠. 원래 작년 7월 24일 발매 예정이었던 작품이 1년이나 연기됐고, 기다림 끝에 애틀랜타 메르세데스 벤츠 스타디움에서 7월 19일 비공개 리스닝 파티와 22일 성대한 공개 리닝 파티를 진행하며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지만 앨범은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DONDA ALBUM (LIVE LISTENING FULL***) THIS ALBUM IS FIRE!!!!!!!!


미완성 상태의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칸예는 스타디움을 빌려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무려 하루 11 원에 달하는 대관료를 지불하며 말이죠. 이후에도 8 5일이다, 7일이다, 15일이다 하며 차일피일 미뤄지다 지난 27 시카고 솔저 필드에서   번의 리스닝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도 중요한 앨범 발매 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는데, 기습적으로 앨범을 공개한 겁니다.



돈다는 2007년 성형 수술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난 칸예의 어머니입니다. 돈독한 모자관계를 이어가던 칸예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조울증에 시달리던 칸예의 우울한 음악 세계는 2008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 <808&Heartbreak>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7월 21일 공개한 앨범 아트는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한 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이었습니다. 나이키, 비츠 스튜디오 버즈 이어폰과 함께 리스닝 파티를 예고한 광고 영상 속에는 친어머니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아 마리화나를 흡연하여 도쿄올림픽 100m 육상 대표 선발전 1위를 기록하고도 출전하지 못한 육상 스타 샤캐리 리차드슨(Sha'Carri Richardson)이 등장했습니다. 새 앨범이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죠.


Sha'Carri Richardson & Kanye West | Beats Studio Buds



왜 칸예는 다시 한번 어머니를 작품 속으로 모셔왔을까요. 최근 칸예의 신실한 믿음은 시험에 들었습니다. 27분으로 압축된 <Jesus Is King>은 명 프로듀서 칸예의 명성에 흠집을 냈습니다. '용의 에너지'를 공유한다며 강력 지지하던 트럼프는 몰락했습니다. 2020년 대통령 선거는 웃음거리로 끝났고 영원한 단짝일 줄 알았던 아내 킴 카다시안마저 그의 변덕을 참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칸예에게 남은 건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는 자신, 음악계 거물로 신의 핵심 인물들을 손쉽게 소환할 수 있는 권위, 그리고 소울메이트였던 어머니와의 기억입니다. DONDA는 언뜻 어두운 테마로 펼쳐낸 헌신적인 찬양처럼 들립니다. 그 기저에는 신실함을 과시하는 나르시시즘적인 면모, 그의 왕국과 영광을 바탕으로 자신을 우상화하며 다시 한번 일어서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존재합니다.



거친 기타 연주와 함께 고해성사하는 ‘Jail’ 이후 앨범은 간소한 드럼과 베이스의 구성으로 무거운 오르간 소리와 처연한 전자 기타 연주로 점철된 다크 가스펠입니다. 앨범은 세상을 떠난 팝스모크와 더불어 릴 베이비, 릴 더크, 릴 야티, 푸샤 티, 로디 리치, 트래비스 스캇, 제이지 등 내로라하는 래퍼들이 참여했습니다. 위켄드 등 팝스타, 그의 성가대 선데이 서비스 콰이어도 목소리를 보탭니다.


그 속에서 칸예는 간결한 챈트, 혹은 찬양 중 목사님의 경건한 말씀을 닮은 랩과 노래로 핵심 내용만을 전달합니다. “날 찾기 전에 하느님을 찾는 게 좋을 거야”('Hurricane'), “나는 하느님과 매일 이야기하지… 절친이니까”('Off the grid'), “당신은 살아있습니다. 당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아주세요.”('24').


공을 들인 프로젝트는 확실히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도합 20분에 달하는 'Jesus Lord' 시리즈는 앨범을 관통하는 곡입니다. 프랑스 DJ 게샤펠스타인의 처연한 프로듀싱 위 힘없이 자신을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며 신에게 더욱 기댈 수밖에 없는 자신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2016년 신성하게 다가온 <The Life of Pablo>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지점입니다.


세속적인 곡들도 있습니다. 킴 카다시안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Believe What I Say', 앨범 전반에 반복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생전 음성을 샘플링한 'Donda'처럼. 위켄드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글리치 이펙트와 섞어 단절시키는 'Hurricane'에선 숨이 턱 막히는 칸예의 센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앨범이 균질하지 않다는 겁니다. 릴 야티가 참여한 'Ok Ok', 위대한 로린 힐을 코러스로 초빙한 'Believe What I Say'처럼 번득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를 노래하는 'Junya'는 플레이보이 카티, 타이 달라 사인이 참여했음에도 대체 앨범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론 머스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듯한 'Remote Control'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념과 결부되어 있지 않은 노래들은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내려가고 맙니다.



찬양, 고해성사, 복음, 봉독, 기도, 축도를 종합하려 하다 보니 앨범은 불필요하게 깁니다. 스타디움에서의 리스닝 파티, 코첼라 페스티벌의 선데이 서비스 콰이어와 함께라면 퍼포먼스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을 수 있겠습니다만, 한 장의 앨범으로는 미완의 인상을 남깁니다. 마이크 딘, 스위츠 비츠, 보이원다, 88키즈 등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총출동했지만 가스펠이라는 한계로 게샤펠슈타인만큼 인상적인 트랙은 많지 않고요.


급하게 시간에 쫓겨가며 만든 앨범이라는 티도 납니다. 거대한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근 칸예의 커리어와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2000년대 전성기의 칸예라면 같은 이야기라도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처럼 장대하고도 날카롭게 풀어낼 수 있었겠죠. 래리 후버 주니어의 석방을 요구하는 'Jesus Lord'의 정치적 메시지는 신앙에 가려 희미해지고, 논란의 인물 마릴린 맨슨과 다베이비를 끝내 초빙한 것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기습 발매 직후의 감동에 비하면 들을수록 일련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DONDA>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칸예의 커리어에 반전을 가져올 회심의 한 장입니다. 2018년의 다섯 장 프로듀싱 프로젝트, <Jesus Is King>을 거치며 음악인으로 미래까지 불투명해 보였던 칸예가 2016년 <The Life of Pablo> 수준까지 폼을 끌어올렸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구성은 번잡하고 'Ultralight Beam' 같은 킬링 트랙은 없지만, 흥미로운 지점도 분명한 다크 가스펠 앨범입니다.


오만한 사제처럼 신을 섬기던 칸예에게 하느님은 욥과 자신의 아들 예수에게 그러했듯 고난을 내렸습니다. 부와 명예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권력의 허망함을 체감한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느님은 시대를 호령했던 그의 재능마저 일부 앗아갔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칸예는 기어이 번민과 혼란 가운데 굳건한 믿음과 고백으로 무장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어머니와 신. 가장 원초적인 믿음을 돌아보며 음악계에서의 자신의 권능을 시험하고 세상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거대한 사업 구상의 일환처럼 여겨졌던 <Jesus Is King>에 비하면 훨씬 진실하게 다가오는 신앙 고백입니다. 사라지지 않고, 더 이상 미뤄지지 않고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천재는 더 큰 구원을 향해 거대한 검정 십자가를 어깨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틀거리면서도 굳은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기 42장. 공동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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