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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Sep 08. 2021

[케이팝 명곡 100]
2. 이러다 미쳐 내가

선정, 취합, 배분, 촬영...



멜론과 서울신문 유튜브를 통해 K-POP 명곡 100 기획 모든 노래 순위와 선정의 변, 콘텐츠가 공개되었습니다. 기획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든 리스트가 공개되고 나면 선정 후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기획 과정에서 느낀 점, 기획에 임했던 저의 관점과 리스트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IZM 출신 선후배 분들과는 다양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다른 선정위원 분들과는 소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평가 기준도 궁금하고, 리스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몇 가지 글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선정위원의 한 사람, 관찰자, 관계자의 입장으로 차분히 돌아보고자 합니다.


0. 나를 돌아봐 : 기획을 마치고.

1. 있는 그대로 생각해봐 : 내가 생각한 케이팝 리스트는.

2. 이러다 미쳐 내가 : 선정, 취합, 배분, 촬영...

3. No.1 : 리스트가 담은 의미, 내가 담고 싶었던 의미.


모든 음악은 사회와 소통하며 의미를 찾아갑니다. 효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점수를 표기하는 이유고, 과한 찬사를 자제하려 하는 이유입니다. 해석을 온전하게 만드는 이는 평론가 개인이 아닙니다. 대중과 시간, 사회와 같은 더욱 거대한 존재가 결정할 일입니다. 


초창기 케이팝은 기획된 음악이라는 이유에서 자주 평가절하되었습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당시는 해외 시장의 유행을 따라 틀을 잡아가던 시기였기에 오늘날 체계적인 육성 및 생산 시스템의 결과물에 비춰 보면 완성도가 조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듦새에 집중한 평가, 당시 사회상에 기반한 해석 모두 지금 입장에서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이전 글에서 상징성을 거듭 언급한 이유기도 합니다.




순위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아티스트의 노래를 소개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대로 노래들을 적어나갔습니다. 거의 몇 주 간 일하면서, 걸어가면서, 쉬면서, 밥을 먹으면서 생각나는 노래들을 모두 스프레드시트로 정리했습니다. 더는 나올 구석이 없어 보일 땐 해외 음악지에서 선정한 케이팝 리스트를 참조하고,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등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 플레이리스트도 참조했습니다.


케이팝의 바운더리를 정하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연습생 육성 과정을 통해 선발된 기획사 소속의 그룹 (혹은 솔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는 대전제를 세웠고, 기존 대중음악명반 리스트에 포함된 아티스트들이나 곡은 제외했습니다. 예외도 있었죠. 1990년대 중후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그룹들의 노래들은 상징성 면에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좀...


마인드맵 한 결과 280곡이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각 그룹을 대표하는 노래,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부른 노래, 지금까지도 반복 재생되며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래들을 고르는 과정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후보가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이삭 줍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각 노래마다 주목할 요소들을 한 문장 정도로 짧게 메모해 두었습니다. 'ㅁㅁ년 스트리밍 차트 순위', 'ㅁㅁ지가 선정한 케이팝 ㅁ위', '케이팝에서 ㅁㅁ한 의미를 가진' 등등으로요. 해당 곡의 발매년도, 아티스트별 후보곡 보유량과 해당 아티스트의 소속사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제가 선정한 다섯 가지 기준에 각각 10점씩을 배정하여 총 5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습니다. 기준은 우연의 일치로 멜론이 제시한 네 가지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10점은 개인의 취향으로 남겨뒀습니다.



평가표에 시대별, 아티스트별, 기획사 별 쿼터를 추가했습니다. 시대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리스트가 너무 특정 시간대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노래들이라고 무시받거나 최근 노래라고 평가절하되는 과정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대신 1996년 이전 발매된 노래의 경우 기획 측에서 주문한 부분과 달랐기에 감점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특정 시간대의 곡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 그것도 점수를 깎았습니다. 


특정 아티스트의 노래가 많이 선정됐을 경우 우선 점수를 매긴 다음 일괄적으로 감점했습니다. 특수한 곡의 경우 개인의 취향 항목에서 가산되어 자리를 지켰지만,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자는 생각에 기본적으로 한 아티스트 당 4~5곡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획사 쿼터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100위 내 특정 기획사 그룹의 곡이 20곡 이상, 그러니까 20% 이상이면 감점을 적용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곡을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대부분 3대 기획사들이 발표한 노래들은 감점 대상이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변별력을 만들기 위해 100점 만점이 아닌 50점 만점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1점, 2점 정도 감점이면 충분했습니다. 동점이 발생하는 경우 개인의 취향 부분 점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제 나름의 100곡을 선정하여 메일을 보냈습니다. 



1차 선정 과정이 끝나고 2차 추천 의뢰서를 받았습니다. 선정 위원들의 1차 추천곡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복을 피하려 대표곡 한 곡만을 선정하거나 많은 가수들을 포함하는 리스트를 짜는 경우 오히려 과대 산정 및 과소산정의 위험이 있다고도 전달받았습니다. '대표곡'과 '명곡'을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었죠. 그렇게 생각해도 39명의 선정 위원 분들이 추천하신 노래들로 너무 그 수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각 선정위원이 작성한 100곡에는 그룹별로 차등적인 점수가 주어졌습니다. 1~20번까지는 ㅁ점, 21~40번까지는 ㅁ-1점. 그 점수들이 합산되어 전체 결과로 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든 노래가 중요했지만 60위까지는 신중하게 정할 필요가 있었죠. 1위부터 20위까지는 그래서 최대한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납니다. 


미리 표부터 작성하는 대신, 기획 측에서 준 심사 기준을 바탕으로 스프레드시트 수치를 조정해가며 리스트를 수정했습니다. 한 곡 한 곡 표에 옮겨 적으며 이상한 경우에는 다시 위치를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두 번, 세 번 한 셈입니다. 번잡한 과정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불안도 있었지만 통계와 작성 과정을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100곡을 골랐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4월쯤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두 달가량의 긴 취합 과정을 거쳐 6월 1일 부로 선정평 의뢰를 받았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방탄소년단의 '봄날', 가인의 '피어나', 지코의 '아무노래'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글 작성 시 참고를 위해 각 노래의 순위는 앞자리만 표기되었습니다. 


선정평은 이 곡이 왜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를 부각하여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제시한 선정 요소들을 종합하여 리스트에 오른 당위를 해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요청받은 곡들 모두 제가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기 나온 노래들이었습니다. 특히 '봄날'의 경우 원고 작성 전 유튜브 dkdktv와 함께 촬영한 '방탄소년단 베스트 5곡' 콘텐츠를 위해 대본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Top 5 BTS songs of ALL TIME, chosen by a music critic


뒤늦은 제안이지만 선정위원 분들께 선정평 작성 희망을 우선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운이 좋았던 저와 달리 어떤 분들은 자신이 겪지 않은 세대, 혹은 크게 관심이 없던 담론, 본인의 취향과 반대의 곡을 배정받아 고민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역사나 결여된 지점을 평소 학습과 탐구 과정을 통해 메우는 것이 평론가의 일이지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라 믿기에 드는 아쉬움입니다. 선정평 쓰기를 희망하는 곡들을 4~5순위 정도로 받고, 기획자 분들께서 의사를 종합해 필자를 배분하는 방식이죠. 복잡한 일을 하나 더 얹어드리는 일이었으니 당시에는 제안하기 조심스러웠습니다. 



선정평을 작성하고 나서 한 달 후, 서울신문의 이정수 기자님께 새로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100대 명곡을 소개하는 서울신문 유튜브 콘텐츠 촬영 의뢰였습니다. 10곡 단위로 각 노래를 1분가량 소개하는 영상 촬영 기획안을 전달받았고, 박희아 기자님이 함께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수가 참여하는 기획의 경우 자칫 내가 고른 노래, 나의 픽에만 집중하여 전체 결과에는 무관심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서울신문 측의 제안은 제게 또 다른 행운이었습니다. 100곡의 의미를 짧게나마 대본으로 정리하여 압축하고, 실제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걱정도 됐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전체 100곡 순위를 미리 전달받았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동시에 그때가 후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습니다. 대본을 준비하며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내가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또 어떤 방향으로 기획자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2주간의 촬영을 마치고 다시 한 주의 시간을 거쳐 8월 23일, 멜론과 서울신문을 통해 케이팝 100대 명곡 기획이 공개됐습니다. 




서울신문X멜론 K-POP 100대 명곡 21~30위 | 100 Greatest K-POP Songs curated by The Seoul Shinmun & Melon


멜론 K-POP 100대 명곡 페이지


서울신문 유튜브 페이지


멜론 X 서울신문 명곡 기획 후기 개별 링크


0. 나를 돌아봐 : 기획을 마치고.

1. 있는 그대로 생각해봐 : 내가 생각한 케이팝 리스트는.

2. 이러다 미쳐 내가 : 선정, 취합, 배분, 촬영...

3. No.1 : 리스트가 담은 의미, 내가 담고 싶었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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