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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세상, 감성보다는 이성이 지배

by 행동하는독서

정비소 휴게실에 있다가 핸드폰 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 오픈 시간에 맞춰 일찍 나오느라 워치를 안 차고 그냥 나왔더니, 벨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워치를 차면 자동으로 벨 소리가 울리지 않게 해 두었다. 대신 손목 진동으로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내 벨 소리. 핸드폰에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는 벨 소리 그대로이다. 이제 벨 소리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신 가요를 시간에 맞게 잘라 넣었다. 하지만 벨 소리는 이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끔 타인이 들으라고 착신음만 바꿔주는 정도이다. 그건 내가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름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래 지나면 뭔 노래가 나오는지조차도 잊고 산다.

휴게소에 TV에서는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대다수는 관심이 없다. 핸드폰으로 자기 콘텐츠를 소비한다. 동영상, 게임, 뉴스를 본다. 차량번호를 호명하는 작업자의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이제 웬만한 요금제는 통화가 무제한이다. 전화 통화보다는 데이터를 이용한 SNS로 소통한다. 데이터가 얼마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지하철, 버스, 카페에서도 데이터를 제공한다. 통화보다는 메시지, 글씨보다는 이모티콘으로 주고받는다. 소리가 사라졌다.

이제 크리스마스라 해도 길거리에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저작권 문제라 생각했지만, 실은 소음 문제라고 한다. 음악이 거리에서 이어폰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남들과 공유되는 음악이 아니라 혼자 조용히 듣는 음악이 되었다. 우리 집도 음악적 취향이 제각각이다. 방과 거실에서 각자 이어폰으로 듣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켜두면 불만이 터져 나온다. 가족 수만큼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어서 참 조용하다. TV로 영화 보자고 해도 참여율이 50%를 넘지 않는다.

식당에서도 주문받는 사람이 없다. 키오스크나 태블릿으로 주문하고 로봇이 가져오는 것을 받는다. 말 한마디 안 하고도 식사할 수 있다. 모든 게 이미지와 텍스트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기술은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어폰 없이도 영화를 볼 수 있다.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자막으로 본다. 자막의 중요성은 더 확대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말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서비스가 시행되었고, 웬만한 유튜버는 자막을 동시에 제공한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인스타그램을 보라고 말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진과 영상, 짧은 글이 모든 걸 말해준다. 심지어 말로 설명이 어려우면 인스타를 켜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핸드폰 안에 찍어둔 사진이 넘쳐나기 때문에 말로 묘사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 강의에서 이미지는 이성, 소리는 감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목소리에 끌리는가 보다. 사회가 이성으로 다가가고 있는 건 아닐까? 소리로 전달하고 나누는 사회가 되어야 마음이 움직이고 관계가 깊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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