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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Jul 22. 2019

우리에겐 독서가 필요하다_4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별 일 없는 일상을 꿈구며

         


나는 집 안에 있다. 해가 질 무렵의 오렌지빛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서재와 책상 따위의 그림자가 진해진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시원하고 잔잔하다. 집은 거대한 도서관처럼 방의 쓰임새와 상관없이 일반 문학과 만화책, 일러스트집 등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이고 미디어에서 광고하는 것처럼 근사한 전자제품은 없지만 삶을 꾸리기엔 나쁘지 않은 정도의 설비는 갖춰져 있다. 


막연히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언제부터인가 덤덤하게 상상하곤 한다.      




나는 어디서 살게 될까? 이사장의 뺨을 때리지 않는 이상 잘리지 않을 거라는 공기업을 그만둔 뒤 자그마하지만 예측 가능한 범위였던 소득도 사라졌다. 다시 말해 난 한 달 뒤의 내 상황도 짐작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며 다시 구직 활동을 할 때 주휴수당도 주지 않는 곳에서 최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다는 소리다. 막연히 이때쯤이면 집을 사고 이때쯤이면 대만 정도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의 근거가 완전히 없어진 거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퍼지기 시작하고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는 비혼의 가능성을 훨씬 열어두는 편이다. 아예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두는 강경파도 있고 나처럼 ‘백 퍼센트 하지 않을 거라고는 못하지만’ 수준의 온건파도 있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만나고 보니 그런 유형으로만 교류하고 있는 듯하지만, 뭐. 


삶의 방향을 비혼(또는 그에 한없이 가깝게)으로 맞춰 둔 우리에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언가 ‘승인’받지 않았지만 가족으로 살고 있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는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여자 둘에 고양이 네 마리, 상상만으로도 산뜻한 구성이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 이라며 입을 모아 시작을 열었다. 책은 짧게 짧게 두어 쪽, 길어도 서너 쪽에서 정리되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속도가 붙으면 앉은 자리에서 해치울 수 있는 글이었다. 


K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하면 추억이다’는 책의 구절을 꺼내며 독립하게 되면 당연히 혼자 살 것이라 여겼는데 함께 사는 삶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모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는 의견엔 모든 이가 고개를 주억였다. 지방 고졸 여성의 인프라는 제한적이었고 지속가능한 네트워크도 거의 찾기 힘든 실정이니까. 특히 대학을 통해서 확장되고 교류하는 장이 더 많이 아래로 내려왔으면 하는 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그런 폐쇄된 구조 안에서 살아왔기에 나와 M은 이 책이 ‘서울에 거주하는/고학력자/탄탄한 커리어’를 갖추었기에 가능한 삶이라는 점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지금 우울해하기는 일렀다. 우리는 각자가 꿈꾸는 40대의 모습이 있으니까. 


안정된 소득과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 다니고 있는 M은 실소유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해금과 수영을 한창 배우고 있는 Y는 그때까지도 그것들을 배우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강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외생활자가 될 것이며 그때쯤이면 친구일지 연인일지 부부일지 모르겠지만 파트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편집 디자인이나 영상 제작 따위의 컨텐츠를 만드는 일부터 영어/중국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물론 영어는 ‘Pre-Intermediate' 수준이고 중국어로는 이름이 뭐니, 정도가 겨우지만. 인생은 길고 십 년 정도 공부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그림이었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쓸 것이다. 내가 쓴 소설로 유명세를 얻고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40대는 소득의 출처와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결국은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어서 안정적인 환경에 진입한다는 것이 비슷했다. 경제력이나 주거가 아니라도 속상할 때 할 만한 악기나 운동 하나와는 익숙해져 있어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줄 줄 아는 어른.      



사람은 저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고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구나, 감탄할 정도로 다른 인간상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세심하게 집의 청결을 신경 쓰는 쪽이나 끝내주는 요리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쪽이나 불가해의 영역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단편적이고 대조적으로 나뉜 두 사람을 두고 나는 어느 쪽인가, 비교하는 작업은 꽤 재밌었다. 


누군가와 싸울 때 적당히 회피하는 면이 있는 Y,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K, 물건을 못 버리는 데다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하는 나와 M. 예전의 나는 선물 포장지까지 못 버리고 보관할 정도였다. 지금도 어렸을 때 쓰던 노트와 일기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고 사실 그럴 의지도 없다. 내 손으로 만든 기록물에 관한 열망/집착은 나에게 몹시 자연스러운 거라 개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이렇게 다른 우리는 관계를 맺고 확장해나가는 방식도 달랐다. ‘네트워크’라고 하면 은밀하고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적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책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과 촘촘히 엮여있었고 장르가 다른 인간들과 모여서 대화를 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이 어른 같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학교-직장이 아닌 이색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냐는 물음에 세 명은 입을 모았다. 트위터.


물론 트위터 등 커뮤니티에서 맺은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아예 트친은 실친의 동기화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지만 공통된 관심사로 만나 두서없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꾸준히 관계를 넓혀가는 이들도 있었다. 


(  )가 아니었다면 만날 일도 없었던 친구들. 하는 일도 나이도 다르지만 나와 파츠가 맞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마주치곤 한다.     




‘행복은 빠다야!’ 행복은 보장된 미래라는 책의 구절처럼 우리에게 백 퍼센트 행복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는 내 인생에 백 퍼센트라는 게 이렇게 없나, 싶을 정도로 깜깜해졌는데 다른 이들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기쁘게도 우리 모두 각자의 ‘빠다’를 떠올릴 수 있었다. 


금요일이 공강인 K는 목요일 저녁과 맛있는 음식, 험난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M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 새로운 취미활동을 성실하게 하고 있는 Y는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불규칙적으로 장르 소설을 업로드하는 나는 댓글이 달릴 때였다. 물론 모든 댓글을 환영할 수는 없으므로 나의 빠다는 조금 쓴 맛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조립식 가구는 언제든지 억울함을 감내할 여지가 있다. 수술 동의서나 재산 상속뿐만 아니라 연말정산에 부양가족을 등록할 수 없으며 법적으로 우리의 관계를 명시할 수 없다는 사사로운 사실까지. 전혀 가볍지 않다. 당연하지도 않다. 


혼인 관계도 전혀 관련 없는 두 사람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그 성별과 유형이 여성과 남성의 결합이 아니거나 연인이 아닌 게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국가가 보호하고자 하는 부류가 얼마나 한정되어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내몰리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국가에서 여성과 남성의 혼인만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만들어진 틀 안으로 진입하지는 않을 거다. 튼튼하고 단단하게, 서로의 손을 견고히 잡고 더 개인주의적이기에 더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운동해야 돼. 진짜 체력 길러야 돼.      


우리는 다시 입을 모았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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