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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Jul 19. 2021

한여름 계곡에는 행복이 흐른다

행복의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가?

 한차례 길게 비가 내리더니 어느덧 말도 없이 불쑥 한여름이 찾아온 모양이다. 아직 한여름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민망한 온도 같지만 습도가 높아서 바깥에 나가면 땀이 줄줄 흐른다. 마치 계절이 우리에게 이번 여름은 각오하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 예전부터 아내는 계곡을 가자고 했다. 사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작년 여름은 그렇게 뭘 해볼 새도 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나마 작년에 계곡에 가자고 해서 해 먹은 게 고작 떡볶이를 딱 한번 해 먹은 것이 다였다. 아내는 임신을 하고 나서 부쩍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몸 상태 때문에 집안에 있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한번 어딘가 가면 제대로 놀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은 모양이다. 나는 힘든 입덧기간이 지나간 아내에게 하고 싶은 게 있는지를 물었다. 아내는  "이번 여름에는 어디 멀리 나가지는 않더라도 계곡에서 야외 고기(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를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사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작년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라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던 내가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 근처는 심지어 집 밖으로 50m만 나가면 계곡이 있었는데 작년 여름은 대단한 기억도 없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내와 함께 계획을 짰다. 일단 모든 식자재를 저녁에 미리 사놓고 아침 일찍 나가서 계곡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고기를 구워 먹으리라. 비록 그게 아침이 되었든 점심이 되었든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마트에 가서 고기를 먹을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기다리던 대망의 일요일에 아침 7시부로 나갈 준비를 끝 마친 우리는 마침내 근처 계곡으로 출발했다. 아침 7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던 계곡은 아무도 없었다.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던 일기 예보 때문에 정말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늘도 우리 가족의 외출을 돕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은 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강아지와 함께 신나게 뛰어놀던 우리는 본격적으로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다.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준비해 온 각종 채소와 양념들은 특별할 것은 없어도 야외에서 논다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신나서였을까 고기를 다 먹었을 뿐 아니라 라면까지 먹었다.


 나는 통통해진 배에 손을 대고 하늘을 봤다. 역시 처음 올 때와 같은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을 보면서 문득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늘 야근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을 사는 와중에도 아내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언제나 응원을 해주었었다. 야근이라고 하면 잘하고 오라고 이야기해주었고, 부대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때는 미안하긴 했어도 아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는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일찍 와도 짜증 나고 늦게 와도 짜증이 난다던데 그래도 한결같이 일찍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준 아내에게 작년 한 해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최근은 그때보다 훨씬 일찍 퇴근을 하고 있다. 물론 임신한 아내를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사는 게 조금 지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새 나의 피곤함은 가실 줄을 모른다... [출처:Pixabay-愚木混株 Cdd20]


 우리네 삶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부모님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직장이다. 그건 어쩌면 인류 전체에서 100년 200년이 흘러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직장에서의 만남은 그냥 직장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일로써 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직장에 대해서는 지겨우리만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로 직장에서 받는 월급 이외에 정말로 직장에서 얻는 즐거움이 없다고 한다면 과연 그 긴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겠냐고 묻고 싶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 근래는 월급 말고는 그런 행복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 지쳤다.  


 원래 나는 사소한 것에도 기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바깥을 나갔는데 보는 따뜻한 햇살에 행복하고, 비싸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에 감사하며, 좁디좁은 집이라도 아내와 같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월급은 늘어나지만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들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내가 배웠던 돈이란 자유라 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자유라 했는데 어째서인지 나의 자유는 줄어들고만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밥을 먹고 조금 쉬다가 아내가 계곡에 발을 담그러 가자고 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따가운 햇살도 그저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찰나에 내 발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들을 보면서, 사람이 이룬 결과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시 매분 매 초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아무리 큰 뜻을 품어도 그것은 먼 우주에서 나를 보았을 때 정말로 사소한 변화가 찰나 동안 이루어진 것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내가 훌륭한 성과와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국 나의 위에는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내가 남긴 것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절대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적당한 예시를 하나 든다면 오늘 내가 쓴 보고서는 누가 봐도 지적을 안 할 수 있는 보고서일 수는 없어도,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아내는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것은 아내의 외모나 키, 재산이나 환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상대적인 가치를 쫓을 것인지, 절대적인 가치를 따라갈 것인지에 대해서 감히 어느 하나만 선택하기에는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나약하다. 아마도 그 어딘가 중간쯤에 걸쳐져 계속 살아갈 것이다. 물론 상대적인 곳에서 내가 언제나 맨 앞이면 언제나 좋겠지만 꼭 그렇게만 살 수는 없으니까.  오늘 집 앞의 조그만 계곡에서 집 밖에 나와 마냥 신난 강아지와 웃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곧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상대적인 가치들을 쫓으면서 살겠지만 절대적인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생각해 본다.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예로부터 알려진 상식이다.. [출처:Pixabay-Comf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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