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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Sep 05. 2020

아침에는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2

뒹굴기 '훈련'의 의미


<아침에는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1>에서는 뒹굴기가 하나의 '인지 운동'이 될 수 있음을 나름의 과학적 근거들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크게 맘먹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을 바닥에서 뒹구는 것과 같은 활동에서도, 그 진행과정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지각-인지-운동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를 통해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았던 신경망이 구축되고 더 발달함으로써 감각 및 운동 조절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에 뒹굴기를 추천하는 이유가 단지 '하기 쉬운' 운동이라서만은 아니다.


어찌 생각하면, 달성해야 하는 만보계의 숫자나 따라 할 홈트 영상 없이 자신의 몸에 온전히 집중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훈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 대부분이 한 번쯤 노력해봐서 알듯 약화된 근육을 강화시키고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피 땀 눈물 나게 힘든데, 없던 시냅스 연결망을 만들고 공고히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 간단하게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이런 인지 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감각-운동 과정을 최대한 단순하고 느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마치 아주 천천히 뒹구는 것과 같이 말이다. 무언가 복잡하고 거창한 것(something!)을 향해 달려 나가기 이전에 그것을 하려고 숨을 고르는 자신 안에서 이미 흐르고 있는 맥락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일단 잠시 멈추고 모든 것을 느리고 단순하게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소마틱스 방법론들이나 마음 챙김 명상 등이 느리고 고요한 시간을 강조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 개발된 대표적인 소마틱스 방법론 중 하나인 알렉산더 테크닉(Alexander Technique)을 창안한 프레더릭 알렉산더는 자제(inhibition)라는 단어를 가지고 이러한 작용을 설명한다. 알렉산더는 배우로서 활동하던 중에 자꾸만 목이 쉬어 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렉산더 테크닉을 개발했다. 음성 학자나 의사가 아니었던 그는 많은 병원과 선생들을 만나 치료를 받아 보아도 큰 개선 효과가 없자 스스로 대책을 강구하기에 나섰던 것이다. 이때 알렉산더가 처음 문제에 접근한 방법이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소리를 내고 대사를 말하는 와중에 자기 몸의 자세나 몸 곳곳에서 감지되는 긴장에 주목하며 과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이러한 오랜 탐구 끝에 그가 관찰하고 발견해낸 것 중 하나가 우리들이 어떤 자극에 반응하여 행위하는 과정, 가령 무대 위에서 자신의 차례가 되어(정신적 자극) 대사를 말하는(반응) 등의 모든 행위가 대부분 습관적이고 자동화된 패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습관화된 패턴, 특히 잘 해내려는 과잉된 의도로 점철된 상태에서 무의식 중에 반복하는 안 좋은 습관들이 우리의 몸과 이후의 수행을 망친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렉산더가 제안하는 중요한 접근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자제'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 사이에 틈을 벌리라는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의도를 포함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외부/내부로부터의 모든 자극은 그 반응으로서 내가 무엇인가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몸은 수학 공식이나 함수가 아니다. 이미 완전히 결정된 식에 x값을 넣으면 y값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으로서 x와 반응으로서 y 사이에 무수한 자율적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지는 자극들과 그에 대해 내가 반응하는 과정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주의 깊게 봄으로써 의식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결정되던 반응의 단계들을 잠시 멈춤 하고 이를 다시 능동적인 선택의 기회로 바꾸기 위한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알렉산더가 이야기하는 '자제'는 특정한 동작 시퀀스나, 이렇게 하면 긴장이 풀린다더라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철학적 개념으로서 모든 행동에 적용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사실 과잉된 의도와 그로 인해 일을 오히려 그르치는 상황을 경계하는 말들은 꽤 흔하다. (이전에 <'이완'의 마력에 대처하는 요가 강사의 자세>에서도 연관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알렉산더 테크닉의 '자제' 개념이 특별히 나에게 더 와 닿는 이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춤, 보류하라는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마", "애쓰지 마"와 같이 부정의 방향성만을 강조하는 말들이 궁극적으로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능동성을 가진 주체를 자칫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 비해, 잠시 멈춤 하고 선택하라는 이야기는 하려는 의지 자체를 굳이 내려놓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자제'가 자극과 반응 사이에 틈을 벌리는 작업이라고 해서, 이렇게 안 좋은 습관을 '자제' 한 후에 다시 '좋은 습관'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알렉산더는 자동화된 반응의 메커니즘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림으로써 잠시 멈출 때, 이렇게 안 좋은 습관을 하지 않음으로써 저절로 되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어깨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 견갑골과 팔을 끌어내리며 숨을 후~하고 내쉬는 것 보다 일단 내가 어깨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얼마큼 힘을 주고 있었는지를 느껴보는 것이 '이완'을 향한 보다 가능성 있는 길인 것과 비슷하다. 사실 어깨의 감각을 알아차리리 위해 주의를 집중하다 보면 숨은 저절로 쉬어지고 자연히 팔과 어깨도 약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로 나타나는 반응을 그 상태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오해하면, 오히려 이미 긴장해 있던 몸에 어깨를 끌어내리고 숨을 밀어 내려는 긴장까지 추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제'는 내가 잔뜩 긴장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저절로 내 안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테크닉 PnM 교육 센터 디렉터 김수연 선생님은 이에 대해 "우리 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했다. (선생님이 다른 누군가의 말을 인용했던 것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내 몸에 대한 신뢰 회복은, "근육량이 35%면 나는 평균 이상이군!"이나 "나는 매일 5종류의 필수 영양제를 먹고 있으니까 건강할 거야!"하는 등의 내 몸을 믿을 수 있는 이유들을 열거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매일 "믿습니다"를 삼창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근육량을 늘리고 영양소를 챙기는 노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지금 내가 감각하고 움직이는 몸 경험과 연결될 때, 그래서 노력을 잠시 거두어도 알아서 잘 흘러가고고 굴러가는 내 몸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 충만해 질 때, 몸에 대한 믿음은 자연히 생길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글의 제목인 "아침에는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는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유명한 김영민 선생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이다. 작가로서 김영민 선생님과 그의 글을 굉장히 좋아한다. 사실 덕질을 할 만한 떡밥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열정만큼은 어린 시절 얼굴 없는 가수 조성모의 시디와 테이프를 사 모으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의 글에는 만화책도 아닌데 혼자서 낄낄거리면서 (가끔은 꺽꺽거리며) 웃게 만드는 유머와 그 와중에도 냉철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논리가 공존한다. 이렇게 애정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제목을 감히(!) 오마주한 이유는 그러나, 단순히 작가를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7-8면)


불안하고 어려운 시절에 한적한 곳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견고하게 만들어준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오늘치 나의 삶을 향해 진격 앞으로 하기 이전에 잠시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삶과 나 사이에 틈을 벌리라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이 책을 처음 읽은 후 며칠간은 정말 아침에 눈을 뜨고서 '죽음.... 죽음... 죽음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김영민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공동체의 죽음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별다른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이전에 다시 꿈나라로 되돌아가는 때가 대부분이라 며칠 못 가서 포기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수양이 부족한 나라도 뒹굴거리기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외부의 목소리들을 꺼두고 조용히 내 몸의 소리를 들어보며 그 몸에 공존하는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 계획과 욕구들을 함께 바라보곤 했다. 아침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몸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고, 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욱 무거운 날, 그냥 '뒹굴기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비로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던 날이 있었다. 또 마감 때문에 거의 밤을 새우고서 내 몸은 사라지고 모니터를 보는 눈알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만 남은 것 같던 새벽에, 10분 정도 등을 바닥에 두고 뒹굴거리며 내 몸의 부피와 무게를 확인하고 다시 삶의 무게 중심을 찾기도 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이런 경험들은 내가 몸피와 무게를 가진 인간으로서, 조금은 더 나를 존중하며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기반이자 그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뒹굴거리기는, 내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내 버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생의 에너지로 넘쳐나야 마땅한 아침에 그 생의 끝에 만나게 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삶을 시작해야 할 아침에 잠시 뒹굴거리는 여유를 부리는 것은 나의 삶이 방향도 모르는 채로 나아가는 폭주기관차가 되지 않도록 잠시 브레이크를 잡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급적 매일, 너무 급하지 않게 뒹굴거리고 싶고 뒹굴거리려 한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야 했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애쓰며 살아갈 내가 하는 이 '노오력'이 방향도 선택도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되지 않도록, 오늘의 삶의 무게가 나를 잡아먹어 버리지 않도록 삶과 나 사이에 잠시 틈을 벌릴 수 있도록 말이다.



P.S. 혼자, 괜히, 면구스러워서 덧붙이는 TMI

<아침에는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1>을 쓰고 이 글, 2편을 발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글을 구상하고 1편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쓰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쓰다 보니 내가 맘먹고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에서 다루는 '자제'라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개념이 운동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전반에 관한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다루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글을 쓰기에는 운동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나의 경험과 훈련이 미진하지 않은가 싶어 그냥 2편을 쓰지 말고 1편 제목에서 "-1"부분만 살짝 빼버릴까 하는 유혹에 넘어갈 뻔도 했다. 하지만 이 개념이 나에게 중요하고 앞으로도 많이 고민하게 될 주제라는 것을 알기에, 어리숙하고 충분히 영글지 못한 지금의 관점에서 정리해본 것이 이후의 나에게 또한 어떤 영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글을 완결 지어 발행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의 발언으로도 유명한 표현이다. 빅터 프랭클과 프레더릭 알렉산더가 동시대인 들일뿐더러, 당시 인지 심리학과 관련된 논의들이 상당히 활발히 진행되었을 것이기에 누가 이런 표현의 원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인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당대 학술적 논의와 실천적 방법론들이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책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크로스, 2018.

프레더릭 알렉산더,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 이문영 옮김, 판미동, 2017.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20. (전자책)


커버 이미지: Photo by Federico Fioravant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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