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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an 10. 2021

부상은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남기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체육 시간을 무서워했던 나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적어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체육 시간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괜찮은 척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수업들을 훨씬 좋아하고 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나처럼 속으로는 체육 시간이 불편했던 친구들이 꽤 많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성인이 된 후 ‘요가’라는 나와 잘 맞는 운동을 만나 꾸준히 수련하고,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고, 심지어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머리서기 자세에도 ‘성공’한 일련의 경험은 나에게 고무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며 머리서기에 ‘성공’했을 즈음 나는 상당한 자신감과 도전 의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요가 아사나 중에는 머리서기 외에도 몸을 띄워 균형을 잡거나 전신을 비일상적으로 정렬하는 역자세들이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나는 자신감에 차있었기에 연습만 하면 당연히 다른 자세들도 곧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타고난 겁쟁이답지 않게 다양한 자세에 마구 도전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아도 무카 브륵샤 아사나(Adho Mukha Vrkshasana)였다. 시르사아사나, 즉 머리서기가 두 팔의 팔꿈치 아랫부분(하완)과 머리 위에 균형을 잡고 몸을 거꾸로 세우는 자세라면 핸드스탠드(Handstand)라고 많이 불리는 아도 무카 브륵샤아사나는 두 손바닥 만으로 바닥을 지지하며 물구나무를 서는 자세였다. 지지점의 개수도 면적도 줄어들고, 몸은 더 높은 공중에 뜨게 되므로 머리서기에 비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동작이었다. 


또한 당시 나는 ‘지도자 과정’을 이수 중인 수련생으로서 뭔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래야 한다는 근거 없는 부담감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테고, 그걸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수련을 해온 요가원에서 이제는 지도자 과정까지 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더 열심히 하는 모습, 잘하는 모습을 선생님과 다른 회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비교하지 말라는 것은 요가 수련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듣는 지침이지만, 언제나 가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은 바로 내 맘이 아니던가. 넘쳐나는 자신감과 도전 의식에 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강한 힘으로 나를 뒤에서 몰아 대고 있었고 그 힘에 떠밀려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L-shape 연습

그러던 어느 날, 수업에서 핸드스탠드 자세를 준비하기 위해 두 손으로 바닥을 밀어내는 힘을 기르는 동작을 수련하고 있었다. 물구나무서기 연습은 보통 몸이 뒤로 넘어가는 상황을 대비해서 벽을 바라보며 다리를 넘기는 방향으로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날은 처음으로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는 동작을 해보는 것이었다. 벽을 등지고 서서 손으로 바닥을 짚은 후에 두 발로 벽을 타고 올라가셔 버티는 자세였다. 발로 높이까지 올라가기보다는 골반 높이 정도까지 올라간 후에 몸을 기역자로 만들어서(그래서 L-shape이라고도 부른다.) 유지하며 바닥을 밀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뒤로 넘어가더라도 벽이 받쳐 줄 수 있는 형태로만 항상 연습하다가 처음으로 넘어가는 방향에 안전장치가 없이 연습하다 보니 발을 벽에 대고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자세임에도 묘하게 긴장이 되었다.  


이런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세를 취한 지 꽤 오래되어 힘이 빠져서였을까… 찰나의 순간 갑자기 내 골반이 등 뒤로 넘어가며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등과 허리를 꿍! 찧고 말았다. 어떻게 떨어져야 덜 다칠지 궁리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이 정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찰나였음에도 내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가던 그 감각과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던 느낌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며 내가 어느 나락으론 가 떨어지고 있다는 그 느낌, 곧 어떠한 충격이 내 몸에 가해질 것이라는 공포, 공포에 질려서 온 몸의 근육과 신경이 움츠러들었던 감각, 그리고 덮쳐오는 실제의 충격파. 사실 급작스러운 충격에 근육이 놀라 허리가 조금 뻐근할 뿐 육체적으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컨디션을 확인하러 오신 선생님께도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꽤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내가 매우 놀랐다는 것이었다. 매우. 매우 매우. 


마치 뜀틀을 향해 달려가는 겁쟁이가 실패와 부상을 상상하며 필패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의 근육과 마음은 이미 놀랐고 부상을 입어 버렸다. 물론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팔이 무너지거나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가면 큰 부상을 당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뼈가 부러지거나 목이 꺾이는 것 같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는다. 또 떨어지는 것이 순간이라고는 하지만 재빨리 몸의 방향을 틀거나 다리와 팔을 적절히 활용하여 떨어지면 부상을 줄일 여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와 같이 균형을 잃는 순간 패닉이 되어버리면 대처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근육은 경직되기 때문에 오히려 큰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일시적으로 자신감과 의욕이 만땅으로 차오른 흥분 상태였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그리고 이 사고의 경험으로 인해 나의 겁쟁이 본성은 꿈에서 깨어난 듯 다시 반짝 눈을 뜬다. 


커버 이미지: creativehussain512 님의 이미지,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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