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죽기 좋은 도시다 part 2

체념이 아닌, 수동적 자살

by zeon

그날 저녁, 선물 같던 시간은 닫혀 있던 기억 속에서 지난날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주었다. 그 조각 중 하나는,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한 듯 앞만 보고 질주했던 한때의 나였다.

대학 시절, 영화에 빠진 난, 강의실이 아닌 극장에서 하루를 소비했다. 전공 수업은 빠져도, ‘영상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은 꼬박꼬박 출석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들을 꼬여 학교 안에 있는 막걸리집 ‘와룡’에서 거하게 잔을 비웠고, ‘나중에 뭐 할래?’라는 답 없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다. 그 시절의 나는, 준비 없는 내일을 ’도전‘이라 부를 만큼 대담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조차 ’가능성‘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대책 없는 청춘은 그렇게 흘렀고, 점점 어른이 되어갔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나를 깎아내었고, 스펙이라는 옷을 걸쳤다. 그러다 문득, 도서관 창에 비친 내가 어색해 보였다.


휴가를 낸 어느 아침에,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분주하게 걷는 직장인들 사이로 학생들이 깔깔대며 지나갔다. 그 순간, 젓가락 하나가 툭, 부러졌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새 걸 받으러 가던 중, 문득 편의점 너머 하늘에 내 눈길이 닿았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하늘빛도, 구름도, 오늘은 특별하게 보였다. ‘살아 있음’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대학 시절의 대담함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사회적 당위’에서 벗어난, 아니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을 향한 도약이 아닌, 생을 위한 나직한 결단. ‘수동적 자살’은 그런 선택이었다. 격렬히 부딪히는 대신, 얌전히 거절하는 쪽을 택했다.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살아있다, 경쟁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난다.’ 삐뚤어질지언정 내가 그은 선, 이것을 따라 걷겠다는 자존감 선언이다.


나는 세상이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남들을 위해 억지로 웃지 않고, 관심 없는 대화에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진급이라는, 방향도 목적지도 알 수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뛰쳐나왔다. 미래라는 미지수에는 더이상 투자하지 않았다. 삶이라는 무거운 행렬에서 조용히 비켜나는 생존법을 터득한 것이다.


누군가는 무기력이라고 단언할지 몰라도, 그것이 유일한 자유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졸리면 눕고, 배고프면 먹었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술을 샀고,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불렀다. 목적 없는 하루가 내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되었다.


수동적 자살은 단순한 체념과는 다르다. 이것은 사회가 설계한 ‘삶의 법칙’을 거부하는 능동이다. 브랜딩, 생산성, 성과, 효율. 이것이 성공을 여는 열쇠라고 배웠지만, 결국 족쇄였다. 나는 그 사슬을 끊고, 한 걸음 나왔을 뿐이다. 아주 느리게, 그리고 조용하게.


나는 치열한 생존 대신, 잔잔한 이탈을 꺼냈다. 망각 속에 방치된 진실을 깨웠다. 내 삶은 오로지 나의 몫. 그것이 바로 나의 첫 번째 관행 거부 선언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라, 도전하라, 꿈꾸라 말한다. 나는 그 모든 강요에 등을 돌리고, 내 맘대로 살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흐리지만 무너지지 않도록.


그게 바로, 내가 나를 지켜내는 나만의 특약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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