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도시, 서울
서울은 예비 자살자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콘크리트 반, 사람 반. 그 공기 속에는 차가운 고독이 소리 없이 넘실댄다. 수많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지만, 접촉은커녕 시선조차 쉽게 머물지 않는다. 따스한 체온은 서로 닿지 않고, 쓸쓸한 냉담만이 스쳐간다. 서울, 그 어디에 서 있든, 광활한 우주의 먼지 한 톨처럼 하찮아져 버린다. 도시 속 모든 것이 넘쳤고,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과잉이 개인을 지워버린 것이다.
유별나지 않은 햇살 아래 유별나지 않은 바람이 나를 쓰다듬었다. 하늘빛조차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한 날. 그런 날씨를 닮은 나는, 점점 나의 농도를 잃어갔다. 그래서 더더욱 사라지기 좋은 날이었다.
그뿐일까.
서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강 위에는 다리가, 무려 서른두 개나 놓여 있다. 삼십 층이 넘는 고층 건물은 내 머리로 셀 수도 없다. 사람들은 추락하지 않으려 숨 가쁘게 달렸고, 또 달렸다. 어떤 날은 문득,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러닝머신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뛰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정지된 공간, 그 자체였다.
서울이 품고 있는 고독과 무관심, 그리고 감정의 결핍은 서서히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고 있었다.
어찌 보면 죽음이 가장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편의점 진열대에서 컵라면 고르듯, 아무렇지 않게 선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을 던질 용기도, 생을 닫을 결단도, 내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찰나의 추락이 아닌, 더딘 이탈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톡!
금요일 오후 5시 30분, 팀 단톡방에 회식 공지가 떴다.
“오늘 저녁 6시, 진짜 맛있는 삼겹살입니다~ 빠짐없이 참석해 주세요^^”
익숙한 말투, 익숙한 이모티콘, 익숙한 강요. 관습은 고기보다 질겼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줄을 보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은 불참할게요.”
사실 몸은 멀쩡했다. 다만, 내 영혼이 저전력 모드였다.
상사의 농담에 억지로 웃고, 관심 없는 대화에 맞장구치며, 타지 않게 고기를 뒤집는 그 파블로프적 조건반사가 내겐 꽤 고된 야근처럼 느껴졌다.
주말을 앞둔 퇴근 무렵, 의례적으로 묻곤 했던 팀장의 한마디도 떠올랐다.
”다들 주말에 뭐 하세요? “
이 선임은 필드 약속이 있다고 말했고, 김 책임은 아내와 한옥마을을 간다고 했다. 그 속에서 난 조용히 입술을 닫았다. 그때 팀장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지온씨는? 뭐 좋은 거 혼자 하려고 그렇게 조용해요?“
순간, 내 입술이 더 무거워졌다. 사실 할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할 말이 없었다. 아무 계획도, 의지도, 체력도 없었다. 머릿속은 공허했고, 그냥 솔직하게 말을 흘렸다.
“이번 주말은 그냥 좀 쉬려고요…”
애써 꺼낸 그 한마디는 팀장의 의욕마저 흔들었다.
“그렇군요…”
실망과 경악이 교차하는 반응이었다. ‘의욕 없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으려는 듯, 팀장은 서둘러 제 자리로 돌아갔다.
딸깍!
회식에 빠진 난 집에 와서 캔맥주를 땄다. 곧바로 노트북을 켜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여행이 테마인 한 예능 프로그램 속 사람들을 보며,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어디론가 떠났고, 나는 내 자리를 지켰다. 그저 안녕만이 내게 ‘안녕’하고 인사했다.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관행을 거절했고, 대신 나 자신에게 ‘살아 있음’을 선물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꽤나 생산적인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