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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Aug 12. 2020

나무도 산이 될 수 있을까

엄마와의 등산

 

우리 집이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새 집으로 이사를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산과 가깝다는 점이다. 내 방 창문에서 산을 볼 수 있으니 언제나 시선이 푸르고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SNS에 창문 사진을 올리고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sns에 올린 마운틴뷰 사진>


등산길

우리 아파트 현관을 나와서 왼편으로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거의 매일 산을 오르셨다. 운동이 필요했던 엄마는 아빠를 따라 산을 오르셨다. 그러나 두 분의 속도는 다르셨고, 어느 날 엄만 나에게 함께 산을 오르자고 하셨다.


때마침 마음이 먹먹하던 아침이었다. 평소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언니와 의견이 맞지 않아 전날부터 힘들었던 나는 엄마에게 속을 털어놓을 요량으로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산길을 거닐었다.


엄마와 가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언니와 있었던 속상한 일을 꺼내보였고 그저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며 옅은 미소를 띠고 걸으시던 엄마를 보며 사실 내 아픔은 아픔도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라는 산

엄마는 쉬이 해결되지 못할 마음을 안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의 마음엔 내가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설움이 담겨있겠지? 나의 힘듦을 다 모아도 엄마의 아픔과 견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가 지금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아"라고 말했다. 엄마를 둘러싼 상황과 의무감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나 같으면 도망쳤을 것 같은데 엄마는 그러지 않는구나 싶어 마음으로 조금 울었다.


엄마는 내게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의무감 때문이라면 그 의무감도 내려놓고 엄마가 자유로워지길 바랬다. 그러나 엄만 "힘든 것들을 다 버리고 도망간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힘든 일이 너무 많지만 항상 우리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근심 중에 기쁨을 찾아내는 엄마의 모습은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엄마가 산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직하고 변함없고 많은 것을 품고 있으며 변화에 인내하며 쉬이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산.


산과 나무

아직 나는 엄마라는 산에 거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뿌리내린 땅이 가장 존경하고 또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사실이 감동스럽다. 아직은 엄마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지만 우리가 서로를 놓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것을 믿는다. 그 사실이 내게 힘을 주고 나를 자라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내 삶의 결이 엄마를 닮아가길 기도한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욱 자라나 언젠가 나도 많은 사랑을 품은 산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꾼다.






우직한 나의 산처럼

흔들려도 계속 나아가는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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