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4
'초과근무수당'이냐, '워라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근무시간 외 야근을 하면 공무원은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일반임기제 공무원도 똑같이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 지방직공무원의 경우 야근을 하면 최대 하루 4시간까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 초과근무수당은 직급에 따라 1시간 당 수당 금액이 다르다. 직급이 높을 수록 수당 금액이 커지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밤에 공공기관 건물 옆을 지나다니다보면, 환화게 불이 켜진 사무실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수요일과 금요일 가족의 날이 운영된다. 가족의 날에는 공무원들이 칼퇴근을 한다. 수요일에는 '음악편지'가 라디오 방송처럼 흘러나와서 신청곡들을 들려준다. 그 외에 월,화, 목요일에는 초과근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초과근무수당은 결혼한 유부남들에게는 아내 몰래 저축하는 '용돈' 창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 걸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월급통장과 초과근무수당 통장을 따로 분리해 관리하는 직원들을 몇몇 봤다. 공무원 남편을 둔 아내분들이라면 그냥 애교(?)로 봐주시길. 나는 총각이라 월급통장과 초과근무수당 통장이 같다.
공공기관에 처음 들어와서 초반에는 지금보다는 야근을 훨씬 많이 했다. 야근도 하고 초과근무수당도 받을 수 있으니까 나쁠 게 없었다. 통장에 돈이 쌓이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에 나는 야근을 줄여나갔다. (물론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업무때문에 야근을 많이 한 편이지만) 최대한 오늘 할일은 그날 집중해서 끝내고, 굳이 오늘까지 해도되지 않은 일은 유연성있게 다음 날짜로 하려고 조정했다. 대신 일을 끝마치는 날짜를 혼자서 속으로 마감기한을 정해놓고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엄청 바쁘지 않는 한 야근을 하지 않아도 원활하게 근무시간내에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일을 하는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야근은 꼭 필요할 때만 했다.
2년 전, 언젠가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냇가에 떠내려가는 슬리퍼 한짝 같다.'
출근후 야근, 집. 출근후 야근, 집. 독서모임 외에는 글을 쓰는 하루. 매월 20일 월급날을 기다리는 삶. 뭔가 발전이 없는 정체된 상태. 내가 가진 능력이 계발되지 않고 하루하루 소모되고 있는 듯한 경각심. 동기부여도 잘 안되고, 마음 속 의지도 바람빠지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래서 개인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기도했다.
'뭐 하나 이뤄 놓은 게 없고
뭐 하나 제대로 이뤄갈 것도 정하지 못한채
그저 휩쓸려 내려온듯한
냇물에 속절없이 떠내려가는 슬리퍼 한짝이 된듯한
첨벙첨벙 물살을 헤쳐서라도 슬리퍼를 건져내고 싶지만...
그 슬리퍼는 지난 날의 꿈, 열정, 희망, 목표...
멍하니 아득히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아
공허하면서 텅빈듯하면서 허전하면서...
앞으로 5년, 10년..아니 15년...아니 20년...아니 30년
그렇게 휩쓸려 떠내려갈 것 만 같아
초조한 30대 중반 아재의 넋두리다.'
꿈과 목표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 일을 하며, 시간이라는 냇물에 떠내려가는듯한 나의 삶. 그런 느낌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퇴근 후 내 삶을 찾자. 뭐라도 하자. 나만의 판을 짜자. 나만의 시간을 갖자'
그러면서 제2의 용돈이나 다름없는 초과수당의 유혹을 떨쳐버렸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 삶이, 내가 원래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가?'
'기능적으로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을 홀대하고, 소홀히 여기지 않았는가?'
'공무원 신분이 아닐 때의 너는 과연 어떤 브랜드로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
위와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워라밸을 향해 내 삶은 흘러가게 되었다. 내 삶과 일의 비중을 동등하게 놓자. '자기발전'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될까. 지금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저기 멀리 냇가에 떠내려가는 '슬리퍼'를 주우러 가기 위해 첨벙첨벙 뛰고 있다. 나는 그 슬리퍼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나머지 슬리퍼 한 짝도 냇물에 떠내려 보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