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3
"장가나 가지 뭣하냐..."
"살 좀 빼라....유부남 같이 그게 뭐냐.."
"얼른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지."
"저축 열심히해. 언제 집살래?"
"새 차 사면 저축 못한다이....잘 생각혀."
직장인 김기욱의 달팽이관은 가출을 꿈꿨다. 온갖 소리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달팽이관은 코로나19 시대 이전부터 자가격리(?) 중이었다.
달팽이관은 답답했다. 김기욱의 귓구멍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달팽이관은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람의 귀지를 먹으면 달팽이가 될 수 있대'
달팽이관은 결심했다.
'김기욱의 귓구멍 속 귀지를 다 먹자'.
냠냠냠.
다름아니라 귀지는 달팽이관들에게 '마늘'이나 다름 없었다.
'달팽이가 될 수 있을거야.'
김기욱의 귀지는 단맛이 쏙 빠진 바나나킥 과자 부스러기 맛이었다.
달팽이관은 몇날 몇일이고 귓구멍 속에서 귀지를 먹었다.
열심히 긁어 먹었다.
김기욱이 가끔 귀이개를 귓구멍으로 들이미는 순간, 짜증이 났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귀지를 파낼 때는 화가 났다.
'귀지를 왜 파 내는거야?'
김기욱 이 새끼가 잠 잘 때를 노렸다.
달팽이관은 몇날 몇일이고 귀지를 긁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몸을 뒤척여졌다.
뭔가 딱딱했다.
어? 껍질이 생겼다.
뭐야? 왜 껍질이 생겼지?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달팽이관은 김기욱의 귀지를 모조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계속 먹었다. 얼른 달팽이가 되자!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달팽이관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드디어 귓구멍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드디어 달팽이가 된건가?'
맞다. 달팽이관은 '관'을 떼어냈다.
달팽이관은 김기욱의 귓구멍을 탈출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이젠 달팽이라고 불러야 될 것 같다.
달팽이는 문득 어떤 인간의 말이 떠 올랐다.
"집 나오면 개 고생이여."
환청처럼 들렸다.
김기욱의 귓구멍이 집이었던 달팽이관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달팽이관은 달팽이가 됐지만, 자기가 집을 등에 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면서.)
달팽이를 잡아 먹으려 노리는 생물들.
달팽이를 잡아서 요리하는 사람들.
달팽이를 잡아서 장난치는 어린이들.
세상이 무서웠다.
'아오....젠장.....그냥 달팽이관으로 쳐 박혀 있을 걸'
이미 늦었다. 달팽이는 달팽이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달팽이는 김기욱의 어깨를 지나 팔 뚝을 지나 손 끝을 지나 땅에 내려왔다.
김기욱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떠났다.
계속 기어갔다.
열심히, 열심히.
속도는 느렸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달이 지났다.
달팽이는 힘들었다.
달팽이는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시커머졌다.
달팽이는 껍질 속에 몸을 숨겼다.
먹구름이 몰려 온 것 처럼 어두워졌다.
사람의 신발이었다.
순식간이었다.
뿍. 뿌직.
'내가 죽는구나.'
달팽이에게 달팽이관으로 살았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온갖 소리는 옆집 달팽이관으로 보내버려.'
달팽이관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오던 비기였다.
달팽이관은 김기욱의 귓구멍에서 살던 시절에는 그걸 몰랐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을.
온갖 소리는 옆집 달팽이관으로 보내버릴 것을.
뭘 또 김기욱 귓구멍을 기어나와서 이 고생이람.
이미 늦었다.
달팽이는 사람의 발에 밟혀 죽었다.
달팽이관으로 태어나 달팽이로 삶을 마감했다.
달팽이가 밟힐 때.
뿍.
껍질이 깨지는 소리.
방귀 소리 같았다.
어?
그런데?
응?
어?
뭐야...
뿍.
뿍.
뿍.
김기욱 이 새끼가 자면서 방귀를 뀌는 소리 였던 것.
캄캄했다.
꿈뻑 꿈뻑.
김기욱의 손가락이 또 들어왔다.
김기욱 이 새끼가 자다가 귓구멍을 긁는다.
응?
안....죽....었....다....
모든 게 꿈이었다.
달팽이관은 꿈 속에서 달팽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달팽이관은 생각했다.
이번엔 별이 되는 꿈.
우주를 기어다니는 꿈.
이런 꿈도 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