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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닿은 섬, 반성과 책임 그리고 사죄

‘펜과 종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떠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

by 제로 Mar 24. 2025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 청년이 살았다. 그는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품어온 결심을 실천하기로 했다.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로의 항해. 청년은 ‘펜과 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은 배에 올랐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이전에도 두 번 찾아갔던 섬인 ‘반성과 책임, 사죄’를 향해 노를 저었다.


이번이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방문이었다. 낮게 깔린 안개 속에서 섬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년은 해변에 배를 대고 섬에 발을 디뎠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청년의 눈에, 저 멀리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청년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섬 ‘반성과 책임, 사죄’에 여행 온 청년입니다. 혹시 누구신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반갑네. 나는 일본 에도 시대의 사상가이자 윤리학자, 그리고 후대 학자들에 의해 ‘석문심학’이라 불리는 독자적 철학을 펼쳤던 이시다 바이간이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 이시다 바이간...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시다 바이간이 조용히 설명했다.


"나는 원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상인 생활을 거치며 경제 활동과 윤리적 삶의 균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왔네. 내게 상인이란 단순히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야. 반드시 사회적 책임과 상생을 전제로 해야 하네. 그래서 45세 무렵, 내 집을 강의실 삼아 무료로 강의를 열었고,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배울 수 있도록 했지. 경제적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기여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꽤나 진보적인 관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네."


청년은 그제야 희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이시다 바이간 선생님! 제가 예전에 읽은 『도비문답』에서 말한 상인의 도덕적 책임과 검소한 삶이 생각나네요. 그 가르침은 현대 일본의 기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파나소닉을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나 교세라를 세운 이나모리 가즈오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죠. 기업의 목표가 단순한 이익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시다 바이간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니, 그저 고맙기만 하네."


청년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곧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섬이 워낙 넓다 보니 길을 많이 헤매기도 했고, 배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네요. 아쉽습니다. 겨우 한 분밖에 못 뵈었는데…"


이시다 바이간이 청년을 배웅하며 답했다.


"그럼 잘 가게, 청년. 언젠가 이 섬이 또 그대를 부를지 누가 알겠나. 만나서 반가웠네."


청년은 이시다 바이간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배가 있는 해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길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그들이 청년을 먼저 불러 세웠다.


"안녕하신가, 청년?"


청년은 두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 둘은 바로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요시다 쇼인과, 메이지 유신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후쿠자와 유키치였다.


청년은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는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습니다. 할 말도 없고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는 청년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우리가 누구인지 정말로 아나?"


청년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요시다 쇼인, 당신은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자 존왕양이론을 주장했고, 한반도 정복을 위한 정한론까지 내세웠지요.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칭하며 개척론까지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상 요시다 쇼인 당신의 발상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 당신은 메이지 유신 시기의 대표적인 계몽가이자 우익 세력의 뿌리로 여겨지죠. ‘동양을 벗어나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자’며 탈아입구론을 내세웠고, 정체된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문명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두 분을 모른다고 하긴 어렵겠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청년은 더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배에 오른 청년은 알 수 없는 슬픔과 착잡함을 안은 채 ‘펜과 종이’라는 배를 타고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 위를 건너갔다. 그렇게 섬 ‘반성과 책임, 사죄’에서의 마지막 여행은 막을 내렸다.


청년은 배에 기대어 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이 섬에 오지 않겠어. 적어도 저들이 진정으로 반성과 책임, 사죄를 하지 않는 이상은.”


배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살 위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섬에서 겪은 만남과 대화가 청년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사그라들 즈음,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태양이 섬과 함께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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